[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99] 이승하의 "크리스마스이브의 기도"
크리스마스이브의 기도
이승하
피의 바람이 불고 있나이다 주여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는 지금
불의 포탄이 쏟아지고 있나이다
이 밤을 홀로 지켜야 하는 외로우신 주여
인류의 구원을 왜 약속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을 사지로 보내고
괴로워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것도 모자라 아들을 부활케 하시고
그 아들이 먼 훗날
재림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에서
가슴을 치고 계십니까?
한 어머니의 아들인 미국 군인도
한 할머니의 손자인 이라크 민간인도
부활하지 않을 것입니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이라크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먼 나라 모래폭풍 부는 밤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들 앞에서
총상을 입고 숨져 가는 아이들 옆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이여
당신이 긍휼히 여기는 저들이
지금 부들부들 떨고 있나이다 주여
—『예수ㆍ폭력』(사람들, 2020)

[해설]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 아이들이
2003년 3월 20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이라크의 수도를 공습하면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가 비밀리에 대량살상무기(WMD)를 생산하여 보유하고 있으므로 그 무기를 생산하고 있는 비밀공장을 찾아내겠다는 것이 전쟁의 명분이었다. 그런데 8년간 지속된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군은 이라크 내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 전쟁에서 미군 4,400명이 죽었고 다른 연합군이 300명 남짓 죽었다. 이라크 군인은 수만 명이, 민간인은 10만에서 20만이 죽었다고 추정될 뿐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 수가 없다. 민간인 사망자 중 아이들, 부녀자들, 노인들이 최소한 5만 명은 될 것이다.
신문에 난 이 사진을 보면 이라크인 한 어른이 비행기 폭격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사망한 아이의 시신을 안고 있다.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폭탄이나 미사일 공격으로 죽거나 다치는 이는 군인만이 아니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수많은 민간인이 죽는다. 그런데 작년 2월 2일, 미군과 요르단군이 합동으로 이라크, 시리아 폭격 작전을 또다시 개시하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중동 전체가 혼란에 빠지자 친이란 무장단체들은 중동 영내에 있는 미군 기지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2024년 1월 28일, 친이란 무장단체의 이란제 샤헤드-136 자폭 드론이 요르단에 주둔하는 미군 기지를 타격했고 미군 3명이 전사하였다. 바이든은 이에 대해 보복할 것이라고 공언한 가운데 결국 2월 2일, 이라크와 시리아에 대한 공습이 이루어졌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고 이스라엘과 인근 중동 국가들과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포성과 포화 속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자라는 아이들, 죽은 아이들, 다치는 아이들…….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기도한다. 주여! 독생자를 보내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셨으니 저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군인들을 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총탄에 맞아 죽어야 합니까. 젊은이들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고, 수류탄을 던지고…….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마태오와 누가복음 모두 예수의 베들레헴 출생을 기록하며, 이는 구약에서의 예언(미가서 5:2)의 성취로 해석이 된다.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 마굿간(혹은 가축의 우리)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고 한다.
전 세계 모든 천주교인과 기독교인이 오늘과 내일,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다. 나는 감히 무릎 꿇고 비는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들 앞에서/ 총상을 입고 숨져가는 아이들 옆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이여/ 당신이 긍휼히 여기는 저들이/ 지금 부들부들 떨고 있나이다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 아이들이 저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도록 방관하지 마소서. 저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에서 가슴을 치고 계십니까? 아아 펜대 하나로 이런 시나 쓰고 있는 저를 용서하지 마소서.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