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음반] 대지의 꿈을 노래하다…써니 킴 & 벤 몬더 ‘The Dream of The Earth’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장의 음반’ 62회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의 작품과 한국 출신 재즈 보컬리스트 써니 킴(Sunny Kim·김윤선), 기타리스트 벤 몬더(Ben Monder)가 함께한 2016년 앨범 ‘The Dream of The Earth’를 소개한다.
한 장의 음반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때때로 음악을 듣는 것보다 먼저 시작된다. 표지에 담긴 색과 선, 형태가 음악의 첫 소절이 되기도 하고, 아직 재생하지 않은 음반에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올지 상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The Dream of The Earth’가 그런 음반이다.

이 음반의 표지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한줌의 독일토양’이 자리한다. 붉은색을 중심으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유기적인 선과 반복되는 형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마치 땅속에서 생명이 꿈틀거리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대지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듯하다. 이 작품은 1954년 작품으로 오늘 선정 앨범 커버의 원작이다.

훈데르트바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철학을 평생 작품에 담았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형태, 불규칙한 선을 즐겨 사용했으며, 종이와 캔버스뿐 아니라 포장지와 나무판, 천 조각, 버려진 종이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다. 물감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게 직선은 자연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대신 나무의 성장과 물의 흐름, 생명의 움직임을 닮은 곡선과 나선이 화면을 지배한다. 그의 회화에서 선은 목적지를 향해 곧장 달려가지 않는다. 천천히 돌고, 휘어지고, 되돌아가며 또 다른 길을 만든다.

그러한 훈데르트바서의 세계는 써니 킴과 벤 몬더의 음악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The Dream of The Earth’에서 써니 킴의 목소리는 멜로디만을 전달하는 전통적인 재즈 보컬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하나의 악기가 되고, 때로는 공간을 떠도는 소리가 된다. 그 뒤를 받치는 벤 몬더의 기타 역시 곡을 단순히 반주하기보다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을 확장하며 독특한 사운드 풍경을 만들어낸다.
두 사람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뚜렷한 경계보다는 여백이 먼저 느껴진다. 목소리와 기타가 서로 앞서 나가기보다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하나의 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음이 조용히 겹쳐진다. 훈데르트바서의 화면을 따라 굽이치는 선처럼 음악도 한 방향으로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앨범의 제목 ‘The Dream of The Earth’, 즉 ‘대지의 꿈’은 음악과 미술을 함께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열쇠처럼 다가온다.
대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과 나무, 물과 흙, 계절의 변화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 음반 역시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장하기보다는 침묵과 울림, 음의 잔향으로 듣는 사람에게 천천히 말을 건넨다.

써니 킴은 한국 이름 김윤선으로,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재즈 보컬을 전공한 뒤 뉴잉글랜드음악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호주 그리피스대학교에서 음악공연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에서 다양한 재즈 연주자들과 협업하며 활동했고, 멜버른대학교에서 재즈와 즉흥연주를 가르치는 교육자로도 활동해 왔다.
특히 주목하는 음악적 동반자는 기타리스트 벤 몬더다. 써니 킴은 그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으며, ‘The Dream of The Earth’에서는 몬더의 정교하고 섬세한 기타 연주와 써니 킴 특유의 보컬이 어우러진다.
이후 써니 킴은 벤 몬더, 아르메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바르단 옵세피안(Vardan Ovsepian)과 함께 활동하며 2023년 ‘Liminal Silence’를 발표했다. 자료는 이 작품이 다운비트 매거진에서 ‘깊은 영적·다른 세계의 사운드스케이프’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호주 음악계에서도 주목받았다고 소개한다.
‘The Dream of The Earth’의 앨범 표지를 다시 바라본다.

붉은 화면 안에서 수많은 선과 형태가 서로 얽혀 있다. 어느 부분은 나무의 뿌리처럼 보이고, 또 어느 곳은 세포나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훈데르트바서에게 자연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 그 자체였다. 그의 건축에서도 물결치는 바닥과 식물이 자라는 지붕, 건물과 나무가 공존하는 공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음악도 그렇다.

좋은 음악은 듣는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곡이 끝나고 난 뒤에도 마음속 어딘가에 잔향을 남긴다. 그리고 그 잔향은 때때로 기억이나 풍경, 한 사람의 얼굴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써니 킴의 목소리와 벤 몬더의 기타는 화려함보다는 깊이를 선택한다. 귀에 즉시 꽂히는 멜로디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음향을 들려준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 사이에 숨어 있던 작은 움직임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과정은 훈데르트바서의 그림을 바라보는 경험과도 닮았다. 처음에는 강렬한 색채가 시선을 끌지만, 오래 바라보면 화면 속 작은 선과 형태, 반복과 변주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을 보며 음악을 듣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바라본다.
‘The Dream of The Earth’는 바로 그 두 감각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는 음반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조금은 조용한 공간에서 이 음반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음악이 빠르게 지나가도록 두지 말고, 한 음 한 음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기다려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훈데르트바서가 평생 이야기했던 인간과 자연의 공존, 그리고 써니 킴과 벤 몬더가 만들어낸 음악 속 여백이 어느 순간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대지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생명의 소리가 있다.
‘The Dream of The Earth’.
그 제목처럼 이 음반은 어쩌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대지의 꿈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앨범 개요
앨범명: The Dream of The Earth
아티스트: Sunny Kim & Ben Monder
발표: 2016년
보컬: Sunny Kim(김윤선)
기타: Ben Monder
앨범 커버 원작: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한줌의 독일토양’(1954)
관련 감상곡: Sunny Kim & Ben Monder ‘Tear of Gaia’ 라이브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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