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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17] 이명애의 "외래어"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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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이명애

 

다이어트는 식단 조절

즉 살을 뺀다는 뜻이라네

 

불룩 나온 배는 부유함의 상징

삐쩍 마른 사람들 천지인 북쪽엔

이런 말 생겨날 리 없지

 

디저트는 식후의 간식

쌀밥 먹으면 됐지

과일이나 과자를 꼭 먹는다?

 

엘리베이터

아르바이트

 

터미널

터널

 

카드

카트

 

카센터

카세트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고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홈에버 달라고 말했다가

온몸에 쏟아지는 눈길에 당황한다

 

외운다고 외워지지도 않고

선뜻 물어볼 용기도 없는

두렵기만 한 외래어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곰곰나루, 2022)  

헷갈리는 외래어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오늘은 개천절이지만

 

  한반도에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처음으로 세워진 것을 기념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은 것은 상해임시정부 때부터였다. 고조선도, 삼국시대도, 고려도, 조선도 나라가 분열된 적은 없었다. 중국이 북송과 남송으로 나눠진 적이 있었고 베트남이 월맹과 월남으로 나눠진 적이 있었지만 다 다시 통일하였다. 우리만 단군 이래 분단의 세월을 80년 가까이 보내고 있어 탈북인의 시를 골라보았다.

 

  이명애 씨는 1965년 8월에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1981년 8월에 평안남도에 있는 개천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 2005년 8월에 북한을 떠나 딱 1년 만인 2006년 8월에 한국으로 왔다. 모든 것이 8월에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살자니 제일 불편한 것이 말이었다. 북한에서는 웬만하면 영어 낱말을 쓰지 않는다. ‘트럭’을 ‘뜨락또르’라고 쓰고 있는데 러시아 발음이다. 중국식, 러시아식으로 쓰면 썼지 영어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다이어트와 디저트란 낱말을 쓴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와 아르바이트, 터미널과 터널, 카드와 카트, 카센터와 카세트는 너무 비슷해 헷갈린다. 홈에버는 이랜드그룹이 한국까르푸를 인수하여 영업했던 할인점 브랜드인데 햄버거를 말해야 할 때 튀어나와 본인이 당황했던 적이 있었던가 보다. 남한에서 살면서 외래어 때문에 고생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2014년에 입국한 오영철 씨는 겨레말큰사전 북한 토박이말 자문위원으로 있는데 계간 《겨레말》에서 남과 북이 다르게 쓰는 속담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잉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라고 쓰는데 북한에서는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라고 쓴단다. 우리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고 쓰는데 북한에서는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로 쓴단다. 북한에서는 칠전팔기, 이열치열, 기호지세, 적자생존, 호가호위, 역지사지, 결자해지, 다다익선, 유비무환, 군계일학, 인과응보 같은 사자성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남한에 온 탈북인이 3만 5,000명을 넘어섰는데 그들은 이번 추석에도 성묘하러 갈 수 없다. 외로움과 그리움에 시달리는 탈북인이 주변에 있으면 따뜻한 위로나 격려의 말을 건넬 일이다. 그분들은 어느 시점까지는 북한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남한사람이다. 소외감을 안 느끼도록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면 좋겠다.

 

  [이명애 시인]

 

  2016년 2월 숭실사이버대학 방송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12월 《K-스토리》 신인상으로 등단. 2020년 12월 시집 『연장전』 출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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