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해설] 장세정의 "호랑이 등"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9]
호랑이 등
장세정
엄마는 꿈에 호랑이가 찾아왔다고 했다
일하던 분식집 앞에서 호랑이가 등을 내밀었고
엄마는 넙죽 올라탔단다.
―겁쟁이가 어떻게 호랑이 등에 탔어?
엄마는 대답 대신 희미하게 웃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주삿바늘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던 거야?
―드디어 고통을 용기로 바꾸는 열쇠를 얻게 된 거야?
속으로만 조심스레 묻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엄마는 정말로 가 버렸다
엄마의 사진은 분식집을 한 바퀴 돌았고
나는 엄마가 처음 가는 먼 길을
혼자 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위로가 못 되었다
나를 두고 호랑이를 따라가다니
바닥이 뚫려 버린 빈집에서
나는 밥을 먹었고 체했고
답이 궁금하지 않은 숙제를 했다
엄마 없이 풀어야 하는 숙제가
시작된 것도 알지 못했다
나 또한
가파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동시마중』(2023년 5-6월호)에서
![호랑이 등을 탄 엄마 [이미지 : 차진 기자]](/_next/image?url=https://cdn.presscon.ai/prod/125/images/20250309/1741477091778_149138650.jpeg&w=828&q=100)
[해설]
호랑이를 타고 딴 나라로 간 엄마
이 동시는 모든 생명체가 다 죽게 되어 있다는 진리를 말해준다. 분식집이 엄마의 일터였는데 나쁜 병에 걸려 병과 싸우다가 끝내 병에게 지고 말았다. 엄마는 아픈 엄마 곁에서 자기를 지켜보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꿈에 호랑이가 찾아왔다고. 호랑이가 등을 내밀었고 넙죽 올라탔다고. 동화책을 종종 읽어주던 엄마인지라 자신이 멀지 않아 아이와 헤어질 걸 알고는 상징적으로, 은유적으로 이렇게 말해준 것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고통을 용기로 바꾸는 열쇠를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슬픈 이별 연습이다.
호랑이 등 얘기를 해준 다음날 엄마는 정말 호랑이 등을 타고 딴 세상으로 가버리고 만다. “나는 엄마가 처음 가는 먼 길을/ 혼자 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위로가 되었다/ 위로가 못 되었다/ 나를 두고 호랑이를 따라가다니”는 슬픔을 승화시킬 줄 아는, 아픔을 길들일 줄 아는, 장세정 동시인의 기막힌 표현이다.
이 아이는 이제 엄마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바닥이 뚫려 버린” 엄마 없는 빈집에서 살아가야 한다.
세월이 흐를 것이다. 아이는 체하는 날도 있을 것이고 온갖 숙제를 혼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숙제를 도와줄 엄마가 없으므로 혼자서 다 풀어야 한다. 세월이 더 많이 흐르면 아이도 호랑이 등을 타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동시가 대체로 밝은 세상을 지향하지만 이 동시는 세상사가 밝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얘기해준다. 우리는 때가 되면 다 저승에 가니 이승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얘기해준다.
[장세정 시인]
장세정은 2006년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가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푸른문학상을 받았으며, 2015년 기독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됐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핫-도그 팔아요』 『튀고 싶은 날』 『여덟 살입니다』 『스트라이크!』(공저), 동화 『피겨에 빠진 걸』 『딱 걸렸어, 거란』 『내가 없으면 좋겠어?』(공저)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