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
[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특별기획 ④] 《바이로이트에서 만난 바그너》

소프라노 지영순 전문위원
입력
6시간이 짧게 느껴진 오페라… 왜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마지막 걸작이라 불릴까 2026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현지 리포트

6시간이 짧게 느껴진 오페라… 왜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마지막 걸작이라 불릴까


2026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현지 리포트

 

오후 4시, 바그너의 마지막 세계로 들어가다
 

2026년 7월 31일 오후 4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이 막을 올렸다. 

 

세 번의 막과 두 차례의 긴 인터미션을 거쳐 공연이 끝난 시각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공연 시간만 놓고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여정이다. 그러나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길었다’가 아니라 ‘벌써 끝났는가’였다. 작품이 관객을 빠르게 몰아붙였기 때문이 아니라, 느린 호흡 속으로 깊이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2026년 7월 31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공식 공연 사진Enrico Nawrath가 촬영하고 Bayreuther Festspiele가 제공한 사진

숲길과 광장,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숲이 우거진 언덕 위에 자리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외관은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소박하고 절제되어 있다. 화려한 장식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하도록 만든 공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면 극장 앞 광장은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관객들로 채워진다. 서로 다른 언어가 들리지만, 음악을 기다리는 설렘만큼은 모두 비슷하다. 바이로이트에서는 객석에 앉기 전부터 이미 공연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축제극장 앞 광장과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연민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이야기

 

《파르지팔》은 바그너가 생애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일반적인 오페라가 아닌 ‘무대 봉헌 축제극’이라고 명명했다.

 

작품의 중심에는 영웅의 승리보다 상처와 연민, 구원의 문제가 놓여 있다. 순수하지만 미숙한 청년 파르지팔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게 되면서 비로소 구원자로 성장한다.

 

바그너는 힘이나 권력이 아닌 연민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이것이 《파르지팔》이 단순한 중세 전설을 넘어 오늘의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다.

 

극장 내부 안에서의 필자

성악가의 귀로 들은 바이로이트의 음향
 

성악을 전공한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균형이었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무대 아래 깊숙이 감춰져 있다. 그곳에서 올라온 소리는 객석을 향해 직접 쏟아지기보다 공간 속에서 충분히 섞인 뒤 무대 위 목소리와 만난다.

 

오케스트라의 음향은 깊고 풍성하지만 성악가의 목소리를 덮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수에게 쉬운 무대인 것은 아니다. 큰 소리보다 안정된 호흡과 정확한 발성의 중심, 긴 프레이즈를 유지하는 힘이 요구된다.

 

《파르지팔》의 성악은 기교를 과시하는 방식과도 거리가 있다. 암포르타스의 고통, 쿤드리의 복합적인 내면, 파르지팔의 변화는 음량보다 언어와 호흡, 음색의 깊이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

이 작품에서 목소리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통로이다.

 

1막 이후의 극장안의 모습

절제가 만든 합창의 깊이


앞서 온라인 생중계로 만난 《리엔치》의 합창이 군중의 힘과 역사의 격동을 보여주었다면, 《파르지팔》의 합창은 작품의 정신적 세계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성배 기사들의 합창에서는 개별 목소리보다 하나로 모인 울림이 두드러진다. 

남성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어두운 음색이 겹쳐지며 극장 전체가 거대한 공명체처럼 느껴진다.

 

강한 음량이 아니라 절제된 호흡과 균형이 만든 감동이다. 《파르지팔》의 합창은 드라마를 설명하지 않고, 관객이 그 세계 안에 머물도록 만든다. 

1막이후 인터미션의 극장 밖 풍경

 

막이 내린 뒤 시작된 질문

밤 10시가 넘어 극장 밖으로 나오자 숲길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관객들은 큰 소리로 대화하기보다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파르지팔》은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주는 작품이 아니다. 대신 타인의 상처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묻는다.

 

오후 4시에 시작된 공연은 밤 10시가 넘어 끝났지만, 작품이 던진 질문은 극장 밖에서도 계속되었다.

예술이 인간을 완전히 구원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은 적어도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한다. 그 멈춤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상처와 내면을 마주한다.

 

바이로이트에서 만난 《파르지팔》은 한 편의 오페라를 넘어, 음악이 인간에게 연민을 일깨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공연 후 밤의 축제극장

 

지영순의 한 줄
 

“《파르지팔》은 영웅의 힘이 아니라 타인의 상처를 느끼는 연민이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음악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막은 내려갔지만 마지막 선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두운 바이로이트의 숲길을 내려오는 동안, 

그 음악은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Soprano  디바돌체  지영순 교수 

  • 지영순 교수

    이화여대 성악과 졸 
    이탈리아 빠르나조아카데미아 졸 
    이탈리아 오페라하우제아카데미 아디플로마 
    러시아 쌍페떼르부르그음악원 디플로마 
    오페라 라보엠,카르멘,휘가로의 결혼 등 주역 출연 
    주성대,청주대,서원대,경기대대학원 강사 역임

    현, 뮤직라이프 대표,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소프라노 지영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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