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람들/투고
기고

[기고] 작품의 가격은 얼마이고, 작품의 가치는 얼마인가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인사동에서 다시 만난 ‘호당가격확인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2026년 9월 19일, 서울 종로 피카디리국제미술관 사무실에서 앙데팡당 관련 미팅을 마친 뒤 인사동 일대 갤러리를 둘러보며 현장 취재를 했다. 몇 곳의 전시장을 방문하던 중 한 전시장 안내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문서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호당가격확인서’.

 

그 순간 2024년 9월을 전후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갤러리K의 이른바 ‘아트노믹스’ 사건이 떠올랐다.

Chat GPT 생성 이미지

먼저 분명히 하고 싶다. 호당가격확인서 자체가 문제가 있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미술협회가 발급하는 호당가격확인서와 당시 갤러리K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투자사기 의혹은 별개의 문제다. 다만 언론보도를 통해 공신력 있는 협회의 가격확인서가 미술품 판매와 투자 권유 과정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가 알려졌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24년 YTN은 갤러리K의 사업방식을 둘러싸고 경찰이 폰지 사기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신문 역시 해당 업체가 작품 판매가격을 설명하면서 ‘한국미술협회 호당가격’을 근거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2025년 KBS 「추적 60분」에서도 피해자들이 작품 구매 과정에서 진품보증서와 함께 ‘호당 가격 확인서’를 받았으며, 한국미술협회가 발행한 문서라는 점 때문에 가격을 신뢰했다는 증언이 소개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의 의문은 시작된다.

 

작품의 가격은 얼마인가

전시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흔히 이런 질문을 한다.

“이 작품은 얼마입니까?”

하지만 필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묻고 싶다.

“이 작품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구매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갖고 싶은 작품이라면 시장가격을 훨씬 넘어서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고가의 작품이라 해도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면 개인적으로는 가치가 거의 없을 수도 있다. 미술시장에는 거래를 위해 가격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품의 가격과 작품의 가치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호당가격이란 무엇인가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작품 가격을 설명할 때 ‘호당가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호는 회화 작품의 크기를 나타내는 규격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의 작품가격이 ‘호당 30만원’이라면 단순 계산으로 10호 작품은 300만원으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쉽고 편리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같은 작가의 같은 50호 작품이라 하더라도 제작 시기, 완성도, 소재, 전시 이력, 시장 선호, 희소성에 따라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대표작과 습작의 가격이 같을 수 없고, 시장에서 선호되는 시기의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도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하나의 호당가격으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까.

 

누가 호당가격을 정하는가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호당가격은 누가 정하는가.

작가인가.

화랑인가.

협회인가.

감정기관인가.

아니면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인가.

 

갤러리K 역시 과거 소속 작가들의 작품가격 산정 과정에서 한국미술협회의 ‘호당 가격 증명서’를 기준으로 활용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여기에서 가격확인서의 영향력이 커진다. 작가가 스스로 “나는 호당 100만원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협회 명칭과 직인이 들어간 확인서를 제시하는 것은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확인’은 무엇을 확인하는가

 

그래서 가장 먼저 묻고 싶다.

 

호당가격확인서에서 말하는 ‘확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가 희망하는 판매가격을 확인해주는 것인가.

작가의 경력을 검토해 협회가 가격을 정하는 것인가.

실제 시장거래가격을 조사해 적정가격을 산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참고가격인가.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는 협회의 가격확인서를 보면서 “한국미술협회가 이 작품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거나 “이 가격은 시장에서 보장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확인서를 발급한 기관의 의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호당가격확인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호당가격확인서 자체가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시장에서 이를 비치하는 것 역시 문제라고 단정할 수 없다. 문제는 문서의 성격과 한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오해다.

 

참고가격인데 시장가치 보증서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고, 작가의 일반적인 가격수준을 보여주는 문서인데 특정 작품 한 점의 감정가격처럼 이해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미래 가격상승이나 투자수익을 보장하는 자료처럼 활용된다면 문제가 커진다.

 

한국미술협회의 산정기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국미술협회는 호당가격확인서를 어떤 기준으로 발급하는가.

 

작가의 활동연수인가.

개인전 횟수인가.

수상경력인가.

국내외 전시경력인가.

미술관이나 공공기관의 작품 소장 여부인가.

경매 낙찰실적이나 실제 화랑 판매가격도 반영하는가.

작품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를 심사하는가.

그리고 각 항목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가.

 

특히 실제 시장에서 호당 100만원 수준으로 거래된 기록이 거의 없는 작가에게도 호당 100만원 확인서가 발급될 수 있다면, 그 가격을 시장가격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작품도 직접 심사하는가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있다.

확인서 발급 전 실제 작품을 심사하는가.

작가의 이력과 경력만 보는가.

작품을 심사한다면 몇 점을 보는가.

사진인가, 실물인가.

작품의 질적 수준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미술은 장르별 전문성이 필요하다.

 

서양화, 한국화, 조각, 판화, 미디어아트 등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격평가제도를 운영하려면 장르별 전문성과 일관된 심사기준이 전제돼야 한다.

 

심사위원은 누구인가

호당가격 심사위원은 누구인가.

몇 명이 심사하며 어떤 자격으로 선정되는가.

미술평론가인가, 작가인가, 화랑 관계자인가, 감정 전문가인가, 경매 전문가인가.

해당 작가와 친분이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심사위원은 배제되는가.

심사위원 명단이나 심사위원 풀은 공개되는가.

 

개별 심사 전에 모든 심사위원을 공개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심사위원의 선정기준, 전문분야, 제척·회피 규정, 심사방식 정도는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호수는 가격 결정요인의 하나일 뿐이다

 

미술품의 가격에는 크기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다. 작가의 미술사적 위치, 제작연도, 작품의 완성도, 희소성, 소재, 전시 이력, 소장 이력, 경매 실적, 갤러리 판매실적, 작품 상태, 시장 수요 등이 모두 영향을 준다. 호수는 그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파트를 예로 들어보자.

 

같은 30평이라 해도 지역, 단지, 준공연도, 층수, 조망, 교통여건에 따라 가격은 크게 다르다. 그런데 세상에 하나뿐인 미술작품을 단순히 ‘50호이기 때문에 얼마’라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가.

 

호당가격제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호당가격 개념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 거래자료가 적은 신진작가가 최초 가격을 책정하거나, 전시장에서 크기에 따라 일관된 판매가격을 제시할 때 하나의 참고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시장가격’이나 ‘작품의 절대적 가치’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희망가격과 실거래가격은 다르다.

작가의 일반적인 호당가격과 개별 작품의 감정가격도 다르다.

현재 가격과 미래 투자수익 역시 전혀 다른 문제다.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우선 확인서의 성격을 명확하게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구를 넣을 수 있다.

“본 확인가격은 작가의 경력 및 제출자료 등을 바탕으로 산정한 참고가격으로, 특정 작품의 시장가치·재판매가격·투자가치 또는 향후 가격상승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또한 가격 산정기준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전시경력, 수상실적, 공공기관 소장, 경매 낙찰실적, 최근 실제 거래자료 등을 어떤 비율로 반영하는지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심사위원 제도도 투명해져야 한다.

 

심사위원의 전문분야와 자격기준, 이해관계 충돌 방지 규정을 공개하고, 필요하다면 심사위원 풀을 운영해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가격확인서에는 유효기간도 필요하다.

 

미술시장 가격은 변한다. 수년 전에 발급된 가격이 현재 시장가격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장기적으로는 실제 거래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작가는 호당 100만원이다”라는 한 줄보다 최근 몇 년간 어떤 크기의 작품이 얼마에 거래됐고, 낙찰률은 어느 정도이며, 시장에서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신뢰할 만하다.

 

갤러리K 사건이 남긴 질문

 

2024년 갤러리K 사건은 미술시장에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호당가격확인서 자체가 사건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공신력을 가진 기관이 발행한 문서가 투자상품 판매 과정에 결합될 경우 소비자에게 매우 강한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발급기관 역시 그 문서가 시장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한국미술협회에 묻고 싶다

 

필자는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높이기 위해 한국미술협회에 묻고 싶다.

 

호당가격확인서는 정확히 무엇을 확인하는 문서인가.

가격은 어떤 기준과 산식으로 산정되는가.

실제 거래가격과 경매 낙찰자료는 반영되는가.

작품을 직접 심사하는가.

심사위원은 몇 명이며 어떤 자격을 갖고 있는가.

심사위원 명단이나 심사위원 풀은 공개되는가.

이해관계가 있는 심사위원을 배제하는 규정은 있는가.

가격확인서의 유효기간은 얼마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 확인서는 무엇을 보증하고, 무엇을 보증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질수록 호당가격확인서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도 줄어들 것이다.

 

확인서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미술시장은 결국 신뢰로 움직인다.

 

작가는 작품으로 신뢰를 쌓고, 화랑은 거래로 신뢰를 쌓는다. 감정기관은 정확성과 독립성으로, 협회는 투명한 제도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공신력은 직인 하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평가했는지,

어떤 자료를 사용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그리고 그 평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026년 9월 19일 인사동의 한 전시장에서 우연히 다시 본 ‘호당가격확인서’ 한 장.

그 문서를 보며 필자는 다시 질문하게 됐다.

 

“이 작품의 가격은 얼마인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 가격을 믿고 있는가?”

 

작품의 가격은 시장이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가치까지 시장이 전부 정할 수는 없다. 

가격은 숫자로 표시할 수 있지만 신뢰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술품의 진정한 가치는 언제나 그 숫자 너머에 있다.

글 ㅣ 임만택 한국아트넷뉴스 대표

임만택 전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