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시 해설]송석증의 "연어 2"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송석증의 "연어 2"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11] 

  연어 2

 

  송석증

 

  어머니 부음 듣고 비행기 타지 못했다

  구멍 난 지갑, 피눈물을 흘린다

  LAX에서 서울행 비행기는 이륙했다

  나는 데스밸리의 모래언덕을 넘고 있다

  갈증에 메마른 마음 바스라져 먼지 되고

  어처구니없게 헤실바실 23년이 무너졌다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셨다

  뿌리 깊은 조국에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서둘러 이민 간

  부초처럼 떠난 아들은 논 귀퉁이의 피, 잡초였다

  논김으로 자란 앤생이였다

  켜켜이 손때 묻은 사진첩 펼쳐본다

 

  무명 같은 어머니 손 잡고 찍은

  코흘리개 까까중이 씩 웃는다

  슬픔이 옹이 져야 그리움 잎새 핀다

  이제 가슴속의 그리움 못자리는

  메말라버리고 말았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모춤으로 논둑에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사막 밤이슬은 사막식물을 기르고

  알래스카 연어 떼 남대천을 향해 떠난다

 

  ㅡ『늙은 황야의 유혹』(문학의전당, 2009)

   

어머니 부음 듣고 비행기 타지 못했다_송석증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이민 1세대의 설움

 

  이 시에 나오는 ‘논김’은 논에 난 잡풀이고 ‘앤생이’는 가냘프고 매우 약한 사람이나 보잘것없는 물건을 가리킨다. 다 자기비하적인 뜻을 지녔다. ‘모춤’은 보통 서너 움큼씩 묶은 볏모나 모종의 단을 말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비행기표를 구해 한국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게 천추의 한이 되어 이렇게 시로 썼던 것이다. 연어는 모천회귀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그날, 나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위스키, 코냑, 포도주 등 각종 술을 스무 잔 이상 마셨다. 미국에서였다. 땅의 높낮이가 구분되지 않았고, 한밤중에 넘어져 얼굴 한쪽을 시멘트에 갈아 불그죽죽해졌다. 아침에 누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 시인님! 강의하실 시간입니다.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사연인즉 이랬다. LA를 중심으로 한 미국 서부의 교민들이 내는 문예지 ‘미주문학’에 시 계간평을 3년 이상 연재하고 있었다. 해마다 여는 여름 문학 캠프에 나를 강사로 초대했다. LA 교외 모 단체 연수원 농장에 캠프가 열린 날, 교민들이 50명 넘게 왔다. 첫날 행사는 오후에 잡힌 나의 특강이었고 둘째 날은 오전에 청중과의 질의ㆍ응답이 예정되어 있었다.

 

  여기선 해가 진 이후엔 거리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24시간 편의점도 없고 포장마차도 없고 2차 3차도 없고 노래방 문화도 없다면서 저녁식사가 끝나자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놀랍게도 수십 명이 가방에서 술병을 꺼내는 것이었다. 오늘 마시려고 비장해온 술이라면서 앞다투어 건네는데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취흥이 오르자 누군가 흘러간 노래를 뽑았다. 술판은 노래판으로 변했다. 미국에 온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친구랑 취해서 노래방에 가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이날이 오기를 1년 내내 기다렸던 사람들이었다.

 

  “여기 머문 지 어언 23년이 되었습니다/ 공항에 내리고 다음날부터 문제가 된 혓바닥/ 뻣뻣한 혀끝 아직도 굳어 있습니다” 이 시를 쓴 송석증 시인은 노래를 부르다 말고 흐느꼈다. 이민 1세대 중 이런 고통을 안 겪은 이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현실적응의 어려움 속에 넘쳐나는 한이 시가 되었고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수필이 되었다. 나는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유정천리’를 불렀다. 술잔이 계속 왔다. 안 마실 수 없었다. 내가 칭찬해준 시인은 고맙다며 잔을 채웠고 비판한 시인은 살짝 째려보며 잔을 따랐다. 필름이 완전히 끊겼고 두세 시간밖에 못 잤을 것이다. 얼굴 한쪽 색깔이 완전히 바뀌어 나타났지만 간밤의 소동을 아는 이들이었기에 큰 박수로 맞아주었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우리는 모두 20년은 젊어 있었다.

 

  [송석증 시인]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3년 미국으로 이민, 캘리포니아주 Glendale시에서 주로 살았다. 1997년 《시대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후 미주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시집 『바다 건너온 눈물』『내 콩팥이 혈액 정화를 거부했을 때』『지시할 땅으로 가라』『혼자 저녁 먹는 사내』『늙은 황야의 유혹』 등을 펴냈다. 미주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8년에 작고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송석증시인#재미교포시인#이승하시인#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