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노유섭의 "교토국제고 교가"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15]
교토국제고 교가
노유섭
어찌 일본 국적 일본 학생들이
한국어 교가를 부르고 있는가
피맺힌 36년을 울고 있는가
일본 고시엔 경기장에
한국어 교가가 여섯 번이나 울려 퍼져
일본 전역으로 생방송되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3,700여 학교가 출전한 고교야구대회에서
최종 우승까지 하다니
이 엄청난 일이 월드컵 4강 때처럼
어찌 가능하다는 말인가
70m밖에 되지 않는 산중 운동장에서
어찌 이러한 영리함, 근성과 성실이 갖추어져
25년 만에 벼락 아닌 벼락 같이
이런 결과를 내었을까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백제 가야 조상의 혼이
재일동포의 한 맺힌 삶이
2,700명 응원단의 눈물 속에서 피어오른다
태권도, 한국어, 한국무용, 한국역사를 배우는
160명의 배움터 교가 속에서
한국의 홍익인간, 무궁화 혼이 살아난다
이 시대에 던지는
진정한 큰 화합(大和)의 실마리, 그 진액이
한국과 일본 전역에
뜨거운 눈물로 녹아내리고 있다
ㅡ『슬픔을 이긴 기쁨으로』(인간과문학사, 2025)

[해설]
일본에 울려퍼진 이 교가
교토국제고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산하 교토한국학원이 운영하는 고등학교다. 1947년 재일동포들이 십시일반 모금하여 한국말과 문화교육을 위해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이후 1958년 대한민국 교육부의 인가를 받았고 재일교포 학생들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다가 한인 학생들의 수가 급감, 궁여지책으로 학교 문을 개방하여 일본인도 받아들였고 2003년에는 일본 교육부의 인가를 받으면서 교명을 ‘교토국제고’로 개명하였다. 특이한 점은 160명의 소규모 학교로서 야구를 잘해 남학생들은 대부분 야구 때문에 진학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현재 한인은 소수가 다니고 있다.
2024년 8월 7일에서 8월 23일까지, 휴식일 3일을 포함해 총 17일간 개최된 제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의 별칭이 갑자원대회 혹은 고시엔대회다. 작년은 1924년(甲子年) 고시엔(甲子園) 구장이 완공된 때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교토국제고가 대한민국의 재외 교육기관이기에 한국의 언론은 한국 vs 일본, 일명 한일전의 구도로 보려는 시각이 강했다. 일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칸토다이이치(동도쿄)가 결승에 오른 또 하나의 팀이기에 역사상 최초의 교토 대 도쿄의 대결로 보도하였다.
현재 교토국제고 재학생의 85% 이상이 일본인이다. 야구부는 일본 전국의 유망주들을 스카우트하여 구성했으며, 일반 인문계로 입학한 일본 학생들은 한류 등 한국 문화를 동경해서 입학한 사례가 대다수다. 작년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오직 1명, 가네모토 유고(金本祐伍) 선수만이 유일한 한국계 일본인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자신이 한국인 혈통이었다는 것을 고교 진학 전까진 알지 못했으며, 당연히 한국어도 하지 못해 사실상 일본인에 가까운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 선수를 인터뷰한 한국인 기자는 교토국제고에 진학한 이유가 민단 산하의 학교여서라는 말 대신 야구 명문이라는 답변을 듣고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노유섭 시인에게 그런 세부적인 실상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1915년에 첫 대회가 열린 일본의 대표적인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학교가 민단 산하의 학교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교가의 가사는 이렇다.
(1절)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2절)
서해를 울리도다 자유의 종은
자주의 정신으로 손을 잡고서
자치의 깃발 밑에 모인 우리들
씩씩하고 명랑하다 우리의 학원
(3절)
해바라기 우리의 정신을 삼고
문명계의 새 지식 탐구하면서
쉬지 않고 험한 길 가시밭
넘어오는 날 마련하다 쌓은 이 금당
(4절)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
새로운 희망길을 나아갈 때에
불꽃같이 타는 맘 이국땅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
정말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가사다. 일본인 학생들이 일본 내에서 이런 가사의 교가를 부른다고 생각해 보라. 한국의 언론은 일본 내에서 재일한국인 학생들이 조국에 대한 엄청난 애국심을 발휘해 우승한 것으로 보도했고 시인도 거기에 동조한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좋다. 교토국제고 재단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인 것이 사실이고 한인(엄밀히 말해 재일한국인)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전에는 태권도, 한국말, 한국무용, 한국역사를 배웠으니 말이다.
지금 이사장은 이융남, 교장은 백승환 선생님이다. 작년 졸업생 중 57명이 일본의 대학에, 20명이 한국의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인에 민족 차별이 심한 일본, 그것도 교토에서 명문고로 키운 선생님들의 노고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1947년에 개교하여 야구부 설립 25년 만에 거둔 우승은 “재일동포의 한 맺힌 삶이/ 2,700명 응원단의 눈물 속에서 피어오른다”고 했는데 이 대목은 과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졸업한 한인 선배님, 전에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한인 선생님들은 우승 후에 고시엔 구장에서 울려퍼진 교가를 들으면서 모두 펑펑 울었을 것이다.
[노유섭 시인]
광주일고, 서울대 경영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1990년 《우리문학》으로 시가, 1997년 《한글문학》으로 소설 등단. 시집 『풀잎은 살아서』『아름다운 비명을 위한 칸타타』 외 다수, 소설집 『원숭이의 슬픔』이 있음. 한국현대시인상, 계간문예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작가연대 작가상, 삼봉문학상 등 수상. 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현재 국제PEN 한국본부 부이사장.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