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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호 에세이] 그리기 머리보다 가슴에 남게되는 사람이야기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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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혹 심심하고 무료할 때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
 
사실은 어린 시절 고개를 숙이고 자폐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때 연필로 긋던 선들에 얼굴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올려진 것이다. 정확하게는 내가 사람을 그릴려고 하면, 사람에게서는 얼굴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명호 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어떤 느낌의 얼굴이 었는지만 기억이 난다. 그 느낌을 열심히 그려내면서 어둡고 힘든 어린 날들을 견뎌냈다.
 
사람의 얼굴에 대한 기억은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결과적으로는 닮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그린 이미지를 머리 속에 넣고 살았다. 내 기억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감정의 지배를 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감정적인 기억들의 얼굴은 내가 다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낯설게 느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안면 인식장애자가 된 것도 같다.
한명호 作
화가가 된 이후에는 어차피 초상화를 주문 받은 것이 아니니까 느낌대로 막 그릴 뿐이다. 이 느낌은 내 기억 속에 사랑으로 미움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정리해 버리는데 사용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고 뒤끝도 없는 걸까?
한명호 作
내가 처음 피카소의 누드 드로잉을 봤을 때 느꼈던 마음은 부러움이었다. 풍만한 여자의 누드를 힘차고 간결한 선으로 그리고 똥꼬를 별 모양으로 마무리한 재치가 참 부러웠었는데, 나는 아름다운 몸도 풍만한 육체도 그릴 줄 모른다.
그것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한명호 作
내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내 주변에 어른거리다 사라진 잔상 들이고 이미지이다.
나는 그 이미지를 붓 잡아 종이 위에 올려놓을 뿐이다.
그려 놓은 얼굴들은 벽에 붙어서 나하고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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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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