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향기] 가마솥에 끓여낸 그리움- 박정분
"모여라!"
그 한마디에 가마솥 안에서는 오래 된 고향이 들끓기 시작한다. 갯벌의 숨을 머금은 망둥이와 우럭이 우리 5남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다. 무와 양파, 대파가 어우러진 갈무리 뒤로 알싸한 청양고추가 정점을 찍는다.
한소끔 끓어오르는 생동감 위로, 푸릇한 날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넣는다. 낡은 가마솥의 무쇠 벽을 뚫고 나올 듯, 고향의 향기가 사방으로 번져 나간다. 이 진한 매운탕 냄새라면, 구만리 저편 하늘에 계신 부모님조차 걸음을 되돌려 찾아오실 것만 같다.
코끝을 스치는 것은 단지 음식의 향기가 아니라 평생을 그리워하던 유년의 기억이다. 얼큰한 국물 속에서 녹진하게 숨이 죽은 배추는 지독했던 그리움을 닮아 더없이 달짝지근하다.
부모님이 천국으로 여행 가신 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형제들의 얼굴을 보자는 취지로 환갑이나 생일을 맞아 떠나는 여행이다. 5남매 모두 결혼했으니 짝꿍들까지 딱 열 명이다. 단체여행이라 의견이 분분하다. 내 속으로 나은 자식조차 속을 모르는데, 하물며 머리 큰 동생들 속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형제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멀리 여행 가는 것도 의미 있고 좋겠지만, 얼마 전까지 투석 받은 오빠를 위해서 이번 여행은 고향 근처 태안에 머물기로 했다.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에 있는 바위를 들어보니 늦잠 자던 낙지가 화들짝 놀란다. 장갑 낀 손으로 확 낚아챘다. 낙지는 살짝 데쳐서 숙회로 먹고, 망둥이와 다른 물고기는 셋째넷째가 깔끔하게 손질해서 매운탕을 끓였다. 밀가루를 질게 반죽해서 매운탕에 뚝뚝 떼어 넣었다. 아주 근사한 요리가 되었다.
유년 시절 온 가족이 둥근 오봉상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깔깔대며 함께 먹던 수제비 맛이다. 갓 잡은 바지락의 절반은 탕으로 끓이고, 나머지는 까고 호박이랑 부추, 쪽파와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서 해물파전을 만들었다. 파전 위에 들깻잎을 고명으로 얹어주니 향긋하고 감칠맛이 나서 훨씬 더 맛있다. 막걸리와 파전은 한 쌍의 잉꼬부부다.
오전 오후 두 번씩 해루질을 했다. 장갑을 끼고 망둥이를 잡는데 어찌나 힘이 세고 미끄러운지 요리조리 빠져나가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눈앞에서 여러 번 놓쳐버렸다. 바위를 뒤집어서 흙탕물을 살짝만 건드려 놓으면, 그 속에 숨어 있던 망둥이가 지레 겁을 먹고 팔딱팔딱 튀어 오른다. 초보자들은 나처럼 바위를 뒤집어서 망둥이나 낙지를 잡고, 고수들은 낚시로 잡는다. 물이 빠지고 바위에 붙어있는 낙지를 잡으려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위에 붙은 낙지를 떼는 순간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나보다 낙지가 더 놀랐다. 낙지는 망둥이보다 머리가 좋고, 갯벌에 훨씬 빨리 숨는다.
50년 전에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호롱불을 밝히고 잡았던 낙지보다 이번에 잡은 낙지가 훨씬 더 크고 행동도 빠르다. 아날로그시대에서 스마트시대로 변한 것처럼, 낙지가 많이 똑똑해졌다.
검은 재앙이 훑고 지나간 태안의 바다, 그로부터 어느덧 열일곱 해가 흘렀다. 모진 세월을 견디고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명들은 갯벌 아래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모래흙을 살짝 걷어내자, 꼿꼿이 몸을 세운 바지락들이 반가운 얼굴을 내민다.
호미 끝으로 길어 올린 바다의 보석들, 그것을 까서 노릇한 파전을 부쳐 형제와 이웃의 상에 올렸다. 바다의 신선함이 그대로 배어든 고소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함께 나누는 온기 덕에 맛은 더욱 깊어졌다. 향수에 메말라 있던 내 가슴 위로 모처럼 촉촉한 단비가 내린 기분이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가끔은 서로 부딪히며 삐걱대기도 하겠지만, 그것조차 양보와 사랑으로 보듬으며 이 길을 오래도록 함께 걷고 싶다.
* 해루질 : 밤에 얕은 바다나 갯벌에서 붉을 밝혀 맨손이나 소형 도구(호미, 뜰채)로 조개, 게, 낙지 등 어패류를 잡는 행위를 말함.

[심향 단상]
형제들이 모여 고향 가까운 태안으로 여행을 떠난 화자의 이야기,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이야기는 밤을 새며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향의 맛이 진하게 우러나 흥미진진합니다. 망둥이와 우럭, 낙지와 물고기를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다니 도시에서 자란 저는 꿈만 같습니다.
낙지가 망둥이 보다 머리가 좋고, 옛날보다 머리가 좋아졌다는 것은, 사람들의 어업 방식이 발전하다 보니 낙지도 저 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나타나면 잡히지 않으려고 머리를 최대한 써서 도망갈 방법을 터득했을 겁니다. 어머니와 낙지 잡던 일을 떠올리며 화자는 추억에 젖어봅니다.
'오봉'은 '쟁반'을 뜻하는 일본어로, 알루미늄으로 만든, 다리를 접었다가 펼 수 있는 둥근 오봉상을 많이 사용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상판이 쟁반처럼 크고 둥글며 그림이 그려져 있고, 뜨거운 음식을 올려놓아도 자국이 잘 나지 않는 밥상입니다. 그 후 자개상과 교자상을 사용하며 오봉상은 보기 어렵게 되었지요.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많지 않아서 밀가루로 수제비나 칼국수를 많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칼국수보다는 수제비가 만들기 훨씬 편하여, 대충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얇게 밀어서 작게 떼어내 끓고 있는 국물 속에 넣으면, 빨리 익고 만들기 쉬워서 자주 해 먹던 음식입니다. 수제비 먹어본 지도 꽤 오래 되었네요.
형제들이 함께 모여 옛날을 추억하며 매운탕과 수제비를 해 먹는 모습을, 멀리 계신 부모님께서 보시면 무척 흐뭇해 하셨을 것 같습니다.
막걸리와 파전은 한 쌍의 잉꼬부부라고 합니다.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막걸리가 있으면 파전(빈대떡)이 생각나고, 빈대떡이 있으면 막걸리가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지요. 또 비오는 날에는 빈대떡이 생각나고 빈대떡을 부치면 막걸리가 생각나겠지요?
'빈대떡 신사' - 가수 한복남의 노래,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요즘 저도 막걸리 맛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막걸리'는 '방금 막 걸러낸 술'이라는 의미로, 저희 집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마시지 않았는데, 밖에서 가끔 식사하며 막걸리 마시는 일에 조금 익숙해지고, 그 맛을 보니 약간 쌉싸름하지만 숭늉과는 또 다른 정이 가는 맛이었습니다. 현재는 작은 그릇에 반 잔 정도가 저는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더 좋아하게 되면 빈대떡도 찾게 될 것 같아 웃음이 납니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예인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기름 유출 사고로 만리포 및 태안군 바다 전체가 기름으로 뒤덮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동호회원, 군인, 부녀회, 대학생 및 중고등학생 등)이 직접 일일이 기름때를 제거한 덕분에 최소 10년 걸릴 일을 2달 만인 2008년 2월부터 점차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적 같은 일이지요. 중,고등학생들은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을 반납하고 기름 닦기에 나서며 함께 힘을 합친 결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국민의 단결'은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됩니다.
삶의 여정에서 가끔은 삐걱대기도 하겠지만, 양보와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막걸리에 파전도 드시며 행복한 시간 보내시면서요.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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