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40】 박정호의 "발인·2"
발인·2
박정호
발길에 차인 돌 같았다
필부는 학생이었다
검은 산 검은 들 떨구고 간 새 울음만 살아 들썩거리는 곡전穀戰 길을 질퍽거려서 못 가겠네 아득하여서 더는 못 가겠네 흘린 눈빛 같은 것들, 편린 같은 것들, 검불 같은 것들이 회오리로 휩쓸려 가는 허허벌판이 어디인가? 곧장 가면 그곳이다 불붙일 심지도 없이 삼세시방三世十方 요요寥寥한 중에 철벅철벅 강 건너는 소리, 그렇게 가고 있는가 헤매지 않고 가는가
다시는 오지 말아라
꽃으로도 사람으로도
-『마음 한 평』 (2025. 이미지북)

발인은 떠남의 의식이다.
숨 붙은 모든 것들은 유한하다. 양(陽)이 극에 달하면 음(陰)이 되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된다.
“발길에 차인 돌 같았다 / 필부는 학생이었다” 이미 ‘죽음’을 넘어선 존재의 무명(無名)성으로 들어선다. ‘필부’는 이름조차 없는 신분이 낮고 보잘 것 없는 이를 말한다. ‘필부는 학생이었다’라고 명명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죽음을 맞이한 모든 이들을 말한다. 그런데 왜 ‘학생’이라는 시어를 가져 왔을까. 그것은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거나, 가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의식에 참여하는 존재로써 죽음의 의미를 배우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존재를 말한다.
이 시의 언어는 발인이라는 장례의 리듬 속에서 곡(哭)하는 소리처럼 흘러간다.
‘검은 산 검은 돌 떨구고 간 새 울음만 살아 들썩거리는 곡전穀戰 길을 ······’
여기서 곡전(穀戰)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삶을 말한다. 그러나 울음이나 노래 곡(哭)으로도 읽힌다. 동시에 죽은 자의 영혼을 깨우는 주술적 울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시인은 이어서 말한다.
‘흘린 눈빛 같은 것들, 편린 같은 것들, 검불 같은 것들’ 죽은 자들의 흔적이자 사라지는 빛의 조각들의 나열이다. 그것들은 세상의 먼지와 뒤섞여 허허벌판으로 흩어진다. 그 흩어짐 속에서 시는 비로소 전체를 들여다본다.
‘철벅철벅 강 건너는 소리, 그렇게 가고 있는가 헤매지 않고 가는가’ 넋이 저승으로 건너가는 장면처럼 들린다. 화자는 울지 않는다. 그저 묻는다. ‘헤매지 않고 가는가.’ 그 물음은 남은 자가 떠나는 자에 대한 존중과 연민, 위로일 것이다.
마지막 선언은 노래의 마무리처럼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닌다.
“다시는 오지 말아라 / 꽃으로도 사람으로도”
죽은 자를 완전히 놓아주는 주문(呪文)이다. ‘다시는 오지 말아라’는 단절이 아니라 해방이다. 이승의 고통으로 돌아오지 말고, 윤회의 사슬에서도 벗어나라는 영원의 해원이다.
「발인·2」는 전통과 현재를 잇는 시적 언어로, 이름 없는 존재의 존엄을 말하며 인간의 상실과 귀향을 말한다. 이 시의 미학인 문장의 반복, 의도된 파열과 여백은 곡(哭)의 리듬, 시의 리듬으로 진동과 호흡처럼 작용한다. ‘꽃으로도 사람으로도 오지 말아라’ 이는 자연의 순환 속에 존재의 겸허가 담겨 있다. 또한 이시의 중심축을 이루는 ‘필부는 학생이었다’는 장례의 절차를 빌려 세상 모든 이름 없는 존재를 위한 서정적 진혼시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로 가는 중이다. 걷는 길에서 몸살이 나거나, 때론 피곤해 주저앉기도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엄격하고 단단하게 살기도 한다. 그러다 억울한 일, 슬픈 일, 애통한 일을 두루 겪고 나면 세상의 작은 존재들이 아프다.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사라짐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그 사라짐의 아름다운 세계를 건너가는 중이다.
하루하루······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