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전시/이벤트
전시

[류안이 만난 작가] 100m 천자문으로 현대서예의 길을 연 류경숙

류안 발행인
입력
수정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11월 12일부터 18일까지  열린 류경숙(아호 취정, 무울) 개인전 「나 여기 가고 있다」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현대서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의 장이었다. 특히 이번 전시의 핵심은 무려 100미터에 달하는 천자문 대작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서예의 확장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100m 천자문으로 현대서예의 길을 연 류경숙 서예가 [사진:류우강 기자]

류경숙 작가는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 고립된 시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천자문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4자 단위로, 이후 8자 단위로 연결하며 긴 여정을 이어갔다. 4년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된 이 작품은 단순한 글자 배열을 넘어, 시간성과 공간성의 긴장과 조율을 담아낸다. 

류경숙 서예가는  천자문을 현대적 서예 기법으로 재해석하여 100m에 이르는 대작을 창조했다.  벽면을 가득 메운 추상적 필획이 한자의 전서체의 흔적을 품으면서도 문자 읽기보다는 “쓰는 행위”와 “리듬” 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진 :류우강 기자]

그는 “처음에는 잘 써보겠다는 욕심으로 붓에 힘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음을 비우게 되었고, 결국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욕심과 긴장으로 시작된 붓질은 점차 여백과 비움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서예적 목소리를 발견했다.   

서예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릴 적 부친께서 공무원이셨지만 늘 붓을 잡으셨습니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연스럽게 서예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죠. 어린 시절 부친이 붓으로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며 ‘글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기억이 제 서예 인생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서예를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나요?


1990년에 전통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늘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러다 2007년 담헌 전명옥 선생을 만나면서 제 작업은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선생님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그 만남을 통해 제 서예 세계가 확장되었습니다.

전통서예와 현대서예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현대서예 역시 전통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오늘의 삶과 철학을 작품에 투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년 동안 이어진 천자문 작업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처음에는 잘 써야겠다는 욕심으로 붓에 힘을 많이 주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음을 비우게 되었고, 결국 나를 찾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제 서체도 변해갔습니다. 욕심에서 출발했지만, 비움으로 나아가며 제 내면을 발견한 시간이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나요?

 

어차피 제가 선택한 길이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를 표현하는 데 중도에 멈출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끝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중국 서예계에서도 이런 대작 시도는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본디 예술은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에 크게 자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것뿐입니다.


작품 속에서 ‘여백’이 중요한 요소로 보입니다. 여백을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닙니다. 음악의 쉼표처럼 울림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획과 획 사이의 긴장과 유연함, 시간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이 서예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에서 여백은 드러남과 숨김 사이의 긴장감을 보여주며, 관람객이 그 사이에서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천자문을 널리 보급할 계획은 있으신가요?

 

출판사에서 책으로 묶자는 제안이 와서 빠르면 내년 초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통해 서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후배 서예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예술은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지치지 말고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의 길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예술가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음악의 쉼표처럼 울림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획과 획 사이의 긴장과 유연함, 시간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이 서예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_ 류경숙 [사진:류우강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길게 이어진 천자문 대작이 벽면을 따라 펼쳐져 관람객을 압도한다. 100미터에 달하는 작품은 단순한 서예 작품을 넘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예술적 체험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힘과 여백의 울림을 느끼며 천천히 따라 걸었다. 한 중년 관람객은 “작가의 삶이 그대로 붓끝에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젊은 관람객은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조형적 실험이 신선하다”고 반응했다. 작품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관람객과 교감하는 현대서예의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류경숙 서예가의100미터 천자문 대작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이자, 서예의 모더니티와 여백의 미학을 결합한 실험적 성취로서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사진:류우강 기자]

이번 개인전 「나 여기 가고 있다」는 류경숙에게 있어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서예가로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특히 100미터 천자문 대작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이자, 서예의 모더니티와 여백의 미학을 결합한 실험적 성취로서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그의 붓질은 욕심에서 시작해 비움으로 나아갔고, 결국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부친의 영향,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4년에 걸친 긴 작업은 모두 그의 서예 세계를 형성한 전환점이었다. 이번 천자문은 그 길의 결실이자, 앞으로 나아갈 또 다른 길의 출발점이다.

류경숙 柳敬淑 아호 : 취정(翠庭), 무울

개인전 : 2025 '나 여기 가고 있다 '(한국미술관), 2020 '각약각색전 '(한국미술관), 2018 기획초대전 (다원갤러리)

단체전 : 1991 한국 대만 초대교류전(대만) 시작으로 초대, 기획, 국제교류전 및 단체전 200여회

저서 : "현대서예 천자문" 2025

운영·심사 :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 5.18 휘호대회 운영·심사 외

현재 한국서예협회 현대서예 분과위원장, 인천지회부지회장.

share-band
밴드
URL복사
#류경숙작가#류경숙서예가#100m천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