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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서정춘의 "잉"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서정춘의 "잉"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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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31]

 

 

서정춘 

 

  전라도 순천 어머니가 서울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아가 온 나라가 난리통이다잉 밥은 집에서만 묵고 다녀라잉 마스크는 꼭꼭 눌러쓰고 다녀라잉 사람들 모닥거린 데는 쳐다보지도 마라잉 이래잉 저래잉 잉잉대는 꽃벌의 날갯짓 소리 같은,

 

 

랑은

이음새가 좋은 말

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

사랑하기 좋은 말

 

―『랑』(b, 2025)

 

  

할머니가 아들에게 전화하는 장면을 그려줘요
잉_ 서정춘 [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시라는 게 말이여

 

  시라는 게 말이여, 읽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겄소? 음미할 만한 멋이 있어야 하지 않겄소? 요즘 시 열에 아홉은 처음 몇 줄 읽다가 뭔 소린지 몰라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 부러요. 아아,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말 흉내를 내다가 큰코다치고 쪽박 찰라. 그만하자.

 

  전라도 순천 태생 서정춘 시인의 시집을 보니 제일 긴 시가 10행이다. 쉽고 재미있다. 시의 난해함, 즉 소통 불능이 현대시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평생교육원 나이 지긋한 수강생이 항의의 서한을 보내왔다. 내 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당신은 서정시나 쓸 것이지 왜 나를 가르쳤냐고. 서정시 쓰는 법을 배우러 여기에 온 게 아니라고. 뜻이 이해되는 서정시는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이고, 무슨 소린지 잘 모를 말을 해야지 지금 이 시대의 시라고 생각하는 그분은 익명으로 서한을 보냈기에 답을 드리지 못했다.

 

  시 「잉」은 2020, 2021년 온 세상 사람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칩거해 있던 시절의 얘기다. 순천에 사시는 어머니가 화자에게 전화를 하셨다. 돌아다니지 말고 웬만하면 집에 있으라고. 말끝마다 자를 넣어서 하니 이 얼마나 정다운가. 자식 사랑이 자에 배어 있다. 그 소리가 이래잉 저래잉 잉잉대는 꽃벌의 날갯짓 소리같다고 표현하고는 시를 끝맺음하였다. 말의 감칠맛을 최대치 발휘한 이런 시가 있는가 하면 말의 명랑한 맛, 낭랑한 멋을 마음껏 발휘한 「랑」 같은 시도 있다. “랑은/ 이음새가 좋은 말이라는 것과 너랑 나랑 또랑물 소리로 만나서/ 사랑하기 좋은 말이라는 시구는 은쟁반에 구슬 굴러갈 때 나는 소리를 낸다. 사랑, 자랑, 명랑, 맹랑 같은 낱말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유랑이나 방랑도 좋아한다. 허랑방탕은? 더 좋다. 낭랑한 그대 목소리는? 아리랑 쓰리랑은?

 

  서정춘 시인의 시가 진짜 시다. 미사여구를 동원하거나 모호하게 써야지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횡설수설이나 자기독백이 미덕이 아니다. 이번 시집에 이런 시도 실려 있다. 그는 시인을 소리 없는 혁명가라고 한다. 혁명가는 단상에서 대중이 알아들을 말을 한다.

 

풍월 1

 

시가 뭐야요

아무것도 아닌 아무거야요

 

시인은 누구야요

소리 없는 혁명가야요

 

  [서정춘 시인]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68<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죽편』『봄, 파르티잔』『귀』『물방울은 즐겁다』 『이슬에 사무치다』『하류』와 시선집 『캘린더 호수』, 등단 50주년 기념집 『서정춘이라는 시인』이 있다. 박용래문학상, 순천문학상, 유심작품상, 최계락문학상, 백자예술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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