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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이승하의 "비닐 탈출"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이승하의 "비닐 탈출"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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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25]
비닐 천국 상상도[이미지:류우강 기자]

  비닐 탈출

 

  이승하

 

 

  수족관 속 한 떼의 랍스터

  모두 흰 비닐 끈으로 입이 봉해져 있다

  입을 벌리면 안 될 일이 무엇일까

 

  가로수 나무 심기 공사가 한창 진행 중

  검은 비닐로 뿌리가 칭칭 감겨 있다

  비닐 없이 묻으면 안 되나

 

  바람 부는 초겨울의 거리 스산하고

  흰 비닐 검은 비닐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

  제 세상인 양…… 광물질의 세계를 헤집는 무법자들

 

  백화점에서 마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커다란 비닐봉지 속에서 작은 봉지들이 바스락거린다

  사람 수보다 많은 저 비닐들이 지구의 숨통을 틀어막으리

 

  사람들 비닐을 신고, 비닐을 차고,

  비닐을 쓰고, 비닐을 감고……

  시골 가니 밭마다 온통 비닐로 덮여 있다

 

  나도 비닐에 갇혀 썩어가게 되리

  함께 썩을 수 없는 비닐

  너희는 바퀴벌레처럼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나무 앞에서의 기도』(Km, 2018)

  

International Plastic Bag Free Day – Applied Research Institute – Jerusalem  (ARIJ)

  [해설]

 

  비닐이 이렇게 무섭다니

 

  오늘 7월 3일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Plastic bag free day)’이다. 2008년 스페인의 국제 환경단체인 ‘가이아’의 제안에 의해 만들어진 날이다. 매년 이날이 되면 미국과 프랑스 등 외국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굴러다니는 비닐이 플라스틱과 스티로폼과 함께 인류의 종말을 앞당길 3대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써본 시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일회용 비닐봉투 연간 사용량은 410여 개라고 한다. 일회용 비닐봉투뿐 아니라 수많은 일회용품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일회용 종이컵, 일회용 접시, 플라스틱 빨대 등 쓰레기를 매일 쓰고 버린다. 이것들은 생산과 운반 과정에서 많은 탄소를 발생하지만 더 큰 문제는 버려진 후 처리 과정에 있다. 비닐봉투의 경우 자연 분해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500년 이상이다. 땅속에 매립돼 썩는 과정에서는 인간의 건강에 해로운 각종 유해 물질을 발생한다. 소각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가게에 가면 지금도 열 집 중 아홉 집이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준다. 시골에 가보니 비닐하우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밭두둑이 온통 비닐 천지다. 이런 날이 제정되어 그래도 다행이다.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은 단 하루지만 그 정신은 365일이 되어야 한다.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극단적인 기후변화 등 여러 가지 이상 증상으로 지구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천재지변 중 일부는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자연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을 맞아 오늘 하루만이라도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비닐봉투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어떨까?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 사용하기, 음식 주문 시 개인 용기 지참하기, 소포장된 제품 구매 자제하기 등 작은 노력을 보태도록 하자. 우리 각자가 지구를 살리는 주체가 되자.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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