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26] 김윤환의 "시월 천사"
시월 천사
김윤환
시월에는
천사가 자주 온다
천사는 개천절에
빨간 날을 선물로 주고
한글날에도
노는 날을 선물로 준다
어떤 때는
추석을 선물로 주고
가을 소풍도
선물로 준다
시월 천사야
엄마 아빠에게도
선물을 주렴
―『내가 밟았어』(시와동화, 2018)

[해설]
엄청나게 긴 연휴
10월 3일 개천절부터 시작된 연휴가 12일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우아 열흘, 10월의 1/3을 놀 수 있다. 추석, 추석 대체공휴일, 한글날, 그리고 10월 10일 금요일을 회사에서 휴무로 했거나 내가 월차 신청을 하면 그날도 놀았고 오늘이 12일 일요일, 열흘째 놀고 있다. 아이구, 노는 것도 지겨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는 데 익숙해져서 월요일에 등교하거나 출근할 때 발걸음이 잘 안 떼어지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 동시 속의 아이는 노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학교는 구속이요 감금이다. 개천절과 한글날을 선물한 장본인인 단군과 세종대왕은 아이에게는 천사다. 국군의 날도 국경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사람들에게 휴식을 선물하는 천사는 화자의 엄마 아빠에게는 휴식할 수 있는 날을 선물하지 않는다. 달력에 빨간색 표시가 되어 있는 날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니 아이가 보건대 그런 부모님이 참 안됐다. 어느덧 철이 들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를 그리면서 시인은 10월에 몇 번 있는 휴일에도 일을 하는 이 나라의 수많은 부모들의 노고와 노동을 기리고 있다. 표시가 안 나는 가사노동도 엄연히 노동이다. 잔업수당이나 야근수당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사업체가 요즘엔 많을 테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루덴스 중 어느 쪽이 올바른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는지? 18세기 생물학자 칼 폰 리네는 인간을 지혜로운 존재, 이성적인 존재로 간주해 Homo sapiens라 불렀다. 도구를 사용하고, 4대 문명을 일으키고, 과학기술을 발달시키고……. 요한 하이징하는 1938년에 『Homo ludens』라는 책을 내면서 기존의 학설을 뒤집었다. 인간은 놀기 좋아하는 존재야. 놀이를 통해 문화와 문명을 발달시켰어. 오락, 게임, 미술, 음악, 영화, 스포츠 등이 발전해 온 것은 인간이 호모 루덴스이기 때문이지. 어쨌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노는 걸 좋아한다. 영희야 놀자. 철수야 놀자. 학교에 갔다 왔는데 학원에 가라고 하네, 우리 부모님은 천사가 아니야. 혼 좀 내줘. 어, 아까의 시 해석과 달라졌다. 얼른 그만 쓰고 잠이나 자자.
[김윤환 시인]
196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9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릇에 대한 기억』『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이름의 풍장』『내가 누군가를 지우는 동안』 등을 냈고, 『박목월 시 나타난 모성하나님』, 『한국 현대시의 종교적 상상력』 등을 펴냈다. 현재 단국대 문창과, 협성대 신학대, 장안대 미디어스토리텔링과 외래교수이며 기독교대한감리회 사랑의 은강교회 담임목사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