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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7] 이다인의 "신호등"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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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이다인(송명초 4학년)

 

교문을 나오는

알록달록 달팽이들

 

태권도 미술 피아노 수학 영어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

 

오늘은 몇 명이나 탈출할까?

 

벌써

한 명은 미술학원 선생님 손에 잡히고

한 명은 피아노 버스에 갇혔다

 

느릿느릿 달려가는 달팽이 한 마리

2단 옆차기로 다가오는 태권도 버스가 보였다

 

바로 지금이야

신호등이 재빨리 사거리 모든 길을 닫았다

 

수리수리 마수리

주문을 걸었다

지금부터 신호등 얼음!

 

어디선가 땡 소리가 들렸다

망했다

붉은 마법이 풀렸다

 

—마중물 동시집 제4권 『킥킥큭큭』(도담소리, 2025) 

초등학생 하교길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초등학교 아이들을 달팽이로 지칭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달팽이는 참 느리게 간다. 아이는 느리게,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구경도 하면서 집에 가고 싶은데 엄마는 학교를 마친 아이가 곧장 집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태권도, 미술, 피아노, 수학, 영어 학원 중 서너 군데는 가야 한다.

 

  학원에 가지 않는 것을 아이는 탈출이라고 표현했다. 학원 하나하나가 감옥이라는 뜻일까? 4연에서는 잡히고’ ‘갇히고라고 표현했다. 딴전을 피우면서 느릿느릿 걸어가는 아이를 발견한 태권도 도장의 버스는 2단 옆차기로 달려와서 아이를 태워 간다. 그런데 아이는 환상에 빠져든다. 거리의 모든 신호등이 한꺼번에 같은 색깔을 가져 차들이 다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럼 아이들은 학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수리수리 마수리 마술을 건 이는 마술사가 된 아이인가? 신호등을 꽁꽁 얼어붙게 했으니 학원에 안 가도 된다. 야호! 신난다! 놀자!

 

  그런데 어디선가 땡 소리가 들렸고 그만 마법이 풀려 차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학원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망했다 망했어.

 

  아이들의 취미와 특성을 살린 특기교육이 행해지면 좋을 텐데 대체로 이 땅의 방과 후 교육은 아이의 의사를 무시하고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원할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과 같이 외식을, 영화 관람을, 여행을, 산책하며 대화를, 마트에 가서 같이 물건 사기를, 서점에 가기를……. 아이의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키워주어야 한다. 그럼 신호등이 차들을 다 막는 붉은 마법에 의지할 일이 안 일어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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