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담의 시선 3] 「여덟 개의 심장」
여덟 개의 심장
전비담
심장 한 개 주면 안 잡아먹지
빨간 심장 다 먹고 나면
파란 통행증 내어주지
오른손에 정착금을 쥐고
왼손에 심장을 말아쥐고
서툰 자유의 거리를 가로지른다
여기는 사거리 횡단보도가 너무 많아
환영과 배척이 번갈아 나타나고
절망과 먼저 악수한다
한 번만 살아남으면 되는 사람과
여덟 번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
한 번도 목숨을 걸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 밖에 목숨을 건 사람은 없다는 전설은
심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심장을 다시 짓는 사람들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
목숨을 걸수록
목숨을 더 달라하네
나의 자유는
여덟 개의 심장을 달라하네
여덟 번을 죽고 여덟 번을 살아야 하므로
나는 심장이 여덟 개
그곳에 굶주린 심장을 두고 떠나올 때
여덟 개의 심장을 쥐고 있었네
총탄에 스러진 동무를 강물에 흘려보내고
팔려 간 누이에게 곧 찾아오마
붉은 강을 건너 검은 산을 타고 젖은 하늘을 날아
이름 모를 타국의 국경들을 넘을 때
나는 떠나온 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되고
죄처럼 무겁게
살아가야 할 자가 되었네
자동차 본넷 위 깨진 유리조각들의 날카로운 협박
담장 위에서 갸웃대는 고양이
의심의 눈초리 차가운 혀초리
벽을 둘러치는 모국어의 말초리들이
심장을 달라하네
나는 마지막 심장을 지켜야 하네
하나원을 거쳐 왔어도
하나가 되지 못한 하나를 떠돌며
정착이 유보된 정착을 유랑하며
임진강 휘돌아 굽이치듯
철조망이 풀리면
마지막 심장의 박동을 퍼 올려
두고 온 심장을 찾으러
나는 가야 하네

2025년 상반기 기준 국내 누적 북한이탈주민 수는 3만 4,410명이라고 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자립과 정착을 위해 정부에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그 과제의 대부분이 실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 우리 국민의 몫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남한 사회 적응과정에서 겪는 북한이탈주민의 경제적‧심리적‧사회적으로 복합적인 어려움 가운데 특히 이웃 주민으로서 배려해야 할 부분은 북한 이탈 과정에서 겪은 가족 해체, 구타, 고문, 인신매매 등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불안 등 심리적 문제일 것 같다. 남한 정착 이후에도 편견, 차별, 고립감 등으로 인해 삶의 만족도가 낮고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으며 자살충동 경험률도 일반 국민보다 2배가량 높다.

최근 화성작가회의 기관지 《화성작가》가 기획한 특집 글을 쓰기 위해 화성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 두 분을 만났다. 그들은 남한 생활 십수 년 차인데도 남한 국민과의 문화적 이질감, 언어와 생활방식 차이, 사회적 거리감과 경계의식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북에 남은 가족과의 분리, 재회의 어려움, 죄책감 등도 무거운 짐처럼 지고 있다. 북한 또는 제3국에서 가족·지인에 대한 신변 위협과 국가안보상 위험 요인으로 인식된다는 불안감 또한 크다.
“북한 사람들의 심장은 여덟 개라고 보면 돼요.”
십수 년 동안 훈춘 등지를 넘나들며 북한 주민들을 취재한 적 있는 한 방송 피디가 찔러준 말이다. 섣부른 동정심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본질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충고다.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목숨을 버리며 살아남아야 했을 테니 정말로 여덟 개의 심장을 갖지 않으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겨우 4~5킬로미터 거리에 그어놓은 저 철망의 금만 지워버리면 한 시간 이내로 도착하는 내 나라 땅을 놔두고 수천 킬로미터 타국 땅을 몇 날 몇 달을 돌아 돌아 목숨을 걸고 오다가 목숨이 떨어지기도 하고 팔려 가기도 하고 되잡혀 가기도 하고 와서 적응하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떨구기도 하고 되돌아가 목숨을 떨구기도 하는 사람들.
우리는 같은 모국어의 주민이지만 한 개의 심장을 가진 사람과 여덟아홉 번씩 심장을 갈아 끼우는 사람들로 나뉘어 살아간다. 목숨을 걸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서툴게 걸어가는 이곳,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자유’의 난민이 되어버린 사람들. 분단의 철조망에 찢겨 너덜거리는 유랑의 삶들을 취재하며 나는 또다시 이 땅의 분단이 서럽다. 저 귀한 목숨들을 돌보지 않은 72년 분단이 밉다.❖
전비담 시인

※이 글은 2025년 9월 15일자 《화성신문》 칼럼 ‘시인이 읽는 세상’ 22회차에 동시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