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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02] 권혁모의 "쟁반탑"

이승하 시인
입력

쟁반탑

 

권혁모

 

동대문시장 좁은 길목 사리함 층층이 이고

하오의 지느러미가 꼬리치며 스쳐가듯

삼층탑 경전을 올려

가는 길이 바쁘다

 

뻐꾹새 하루해는 길고도 허기진 봄

키 높이 소음을 감아 미싱은 돌아가고

공양은 아롱진 막고굴

만다라를 찾는다

 

나물무침 다복솔로 점심때가 반짝이면

간 맞춘 된장국에 사연을 듬뿍 올려

비켜라

거룩한 쟁반

몸빼바지 납신다

 

—시조동인 오늘’, 《오늘》 제37(도서출판 영남사, 2025) 

쟁반탑_권혁모 시인

  [해설]

 

  2019325일에 방영된 SBS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최일순 달인은 머리 위에 수건을 접어 올리고, 음식 그릇이 가득 찬 쟁반 여섯 개를 차곡차곡 포개어 머리 위에 얹어 배달에 나서서 멋지게 성공하였다. 이런 신묘한 기술을 가진 분은 전국에 몇 명 없겠지만 동대문시장에 가면 삼층 쟁반탑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이 복작대는 좁은 길에서 삼층 쟁반탑을 본 권혁모 시조시인은 그것을 사리함이나 경전 책자로 보았다. 육체노동에 그만큼 경외심을 느꼈다는 뜻이리라.

 

  때는 날이 풀린 봄이었다. 겨울에는 길에 얼음이 살짝 얼어 있기도 해 이런 식의 배달은 불가능하지만 뻐꾹새가 우는 봄이 되면 사람들 식욕이 당기고 배달음식 주문이 늘어난다. 동대문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꼬불꼬불한 실크로드 막고굴을 돌아다니듯 주문한 집으로 찾아가는 발걸음이 잦아진다. 배달 의뢰를 한 집이나 가게를 찾아가는 일을 불화 만다라(曼茶羅)를 찾아가는 일에 비유한 두 번째 수()도 재미있다.

 

  세 번째 수가 절창이다. 나물무침 다복솔(어린 소나무)이라니, 달래ㆍ냉이ㆍ씀바귀 같은 봄나물로 만든 반찬이나 된장국을 뜻하는 것이리라. 쟁반탑을 머리에 이고 시장길을 나선 아낙네가 큰소리를 친다. “비켜라/ 거룩한 쟁반/ 몸빼바지 나가신다라고. 쟁반탑을 인 아낙네는 위풍당당하게 행진하고 있다. 내가 나가신다, 비켜라. 나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어. 쟁반 3층탑을 머리에 지고 오늘도 그분은 동대문시장 좁은 길목을, 사리함을 층층이 이고서 위풍당당하게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권혁모 시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고등학교와 공주사범대학교 과학교육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하회동 소견」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89년부터 시조동인 오늘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작품상, 한국꽃문학상 특별상, 월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여러 중학교와 고등학교서 교편을 잡았다. 시조집 『오늘은 비요일』『가을 아침과 나팔꽃』『첫눈』 등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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