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 예술계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2021년 대법원 판결 이후 4년, 이제는 결단할 때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가 4년째 멈춰 서 있다. 2021년 대법원은 제24대 이사장 선거에 대해 “선거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무효 판결을 내렸다. 협회 역사상 초유의 판결이었다. 이후 황제성 작가가 제25대 이사장 선거에 대해 선거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선거는 다시 중단되었다. 본안 소송은 아직 시작도 못한 채, 협회는 법원이 파견한 임시 이사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2025년 6월, 협회는 선거를 재개하려 했지만 또다시 중단되었다. 황제성 작가가 선거 절차의 위법성을 문제 삼아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선거는 다시 멈췄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의 불투명성, 선거인 명부의 정비 부족, 후보 등록 과정의 배제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절차가 미술인이 아닌 법률가가 이끄는 임시 체제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예술적 비전 없이 법적 절차만으로 운영되는 협회는 예술 생태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현재 제25대 이사장 선거에는 양성모, 이병국, 정태영, 허필호 등 네 명의 후보가 출마한 상태다. 그러나 황제성 작가의 법적 대응으로 선거는 다시 정지되었고, 본안 소송은 최소 2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협회는 또다시 장기 표류의 위기에 놓였다.
코리아아트뉴스 취재에 따르면, 협회 내부에서는 “회비를 대신 내준 사람이 이긴다”는 식의 금권 선거가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는 지적이 있다. 이사장이 이사를 지명하고, 그 이사들이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은 폐쇄적이고 커넥션 중심이며, 회원 수조차 ‘귀신 회원’으로 부풀려져 외부 세력 과시에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병폐는 단순한 행정 문제를 넘어, 예술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위기다. 협회는 더 이상 이름만 남은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구조 개혁이다
• 선거 구조의 투명화
회비 대납을 통한 금권 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선거인 명부의 정비와 회비 납부 기준의 명확화가 시급하다.
•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화
이사장 중심의 폐쇄적 구조를 탈피하고, 회원 참여 기반의 운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 심사 및 운영의 공개성 확보
미술대전 심사위원 선정, 예산 집행, 사업 계획 등 모든 운영 과정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 중재 기구의 설립
후보 간 갈등을 조정하고, 협회 운영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독립적 중재 기구가 필요하다.
• 문체부의 책임 있는 역할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장기적 파행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조정과 지원이 필요하다.
예술은 자유와 창의의 영역이지만, 그 자유는 책임과 구조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한국미술협회는 더 이상 무기력하게 표류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예술가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권력의 전장을 해체할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