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25] 강인순의 "길 위에서―차마고도"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길 위에서

―차마고도

 

강인순

 

부르고 싶은 이름 몇 굽이마다 버리다

잊었던 얼굴들 몇 부르듯 또 나타나고

, 간다 해발 사천 미터 나 버리러 간다

 

가서 우려내리라 아직 덜 익은 육신

저 부신 설산 아래 신발 닳은 일기 쓰며

보이차 따슨 온기로 온몸 다시 데우리

 

까마득 그 먼 길 차도 익고 몸도 익어

그리운 그 이름 부르며 세월까지 발효시켜

아득한 벼랑길 목숨 돌아와 등불 켜던 곳

 

―『화살나무 곁에서』(책만드는집, 2025)

  

차마고도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차마 갈 수 없는 그 먼 곳

 

  KBS에서 차마고도를 취재해 6부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한 적이 있었다. 하도 재미있게 봐서 DVD 6개로 만들어 출시되자 영구 보존하려고 구입했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던 것에서 시작된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년이 앞서 형성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해발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과 눈 덮인 5,000m 이상의 설산과 아찔한 협곡을 잇는 길을 통해 운남성의 명물인 차 외에도 성도의 명물인 비단의 수출로였고 말, 소금, 약재, 곡식 등의 다양한 물품의 교역도 이루어졌으며 여러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와 지식이 교류되었다. 마방들은 중국 서남부 운남성과 사천성에서 시작되어 티베트를 거쳐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에 이르는 장대한 길을 14개월여에 걸쳐 걸어갔다.

 

  강인순 시인은 버리러간다고 한다. 사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다 버리고 떠나야 한다. 권력과 명예, 욕구와 안락을 다 버려야 한다. 또한 시인은 이 기간이 덜 익은 육신을 익게 하는 기간이라고 한다. 육신이 익을 턱이 있나,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이렇게 반어적으로 표현하였다. 아무리 멀고 험해도, 춥건 덥건, 감기건 몸살이건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몸이 아파도 계속 가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뜻을 이루었다면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목표를 이루었다면 발걸음이 한결 가볍겠지만 그리운 그 이름 부르며 세월까지 발효시켜/ 아득한 벼랑길 목숨 돌아와 등불 켜던 곳으로 가야 한다. 귀향길은 원래 더 많이 외롭고 힘든 법이다. 하지만 인도 쪽에서 살 수는 없으므로 차마 발걸음이 안 떨어져도 집으로 가는 길에 올라야 한다.

 

  차마고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품고 있다. 산 하나를 넘으면서 4계절을 다 체험할 수 있다. 차와 말, 말 그대로 차와 말이 있는 차마고도에서는 순례자나 마방은 다양한 자연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소수민족의 다양한 문화와 풍습을 접할 수 있다. 차마고도를 다큐 프로로 찍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몇 달 동안 마방들과 같이 지내면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닌 우리나라 촬영팀의 노고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강인순 시인]

 

  195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5년 《시조문학》 현상공모에서 「서동 이후」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조집 『서동 이후』『초록 시편』『생수에 관한 명상』『그랬었지』, 현대시조100인선 『사진 한 장』을 발간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추강시조문학상, 안동예술인상, 경상북도문화상, 대한민국예술문화공로상, 한국문학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감사를 비롯하여 안동문인협회 회장, 경상북도문인협회 회장, 경일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현재 격월간 《안동》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강인순시인#시조해설#친구에게들려주는시조#시조읽기#하루에시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