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

[음악이 있는 칼럼] 잡식(雜識)이라는 이름의 직업병 - 정현구

정현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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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와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머릿속은 언제나 선반이 터져나갈 듯한 고물상이나, 온갖 잡동사니가 층층이 쌓인 거대한 다락방을 닮아 있다. 역사, 철학, 미술, 심리학, 심지어 첨단 기술이나 지나가는 사람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긁어모아 기어이 마음 한구석에 저장해 두고야 마는 '지독한 잡식성’을 가졌다. 좋게 말해 박학다식이지, 실상은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직업병에 가깝다.
 

이 잡식성은 단순히 호기심이 많아서 생긴 취향이 아니다. 치열한 생존의 문제이자, 예술가로서 벗어날 수 없는 본능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악보 한 장, 한 장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의 수십, 수백 가지 서로 다른 소리를 하나의 호흡으로 엮어내고, 객석에 앉은 저마다 다른 인간군상의 마음에 울림을 전하려면, 먼저 그들이 살아가는 사고방식과 감정의 결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시대의 공기를 남김없이 흡수하지 않고서, 어떻게 수많은 영혼을 흔드는 작품을 쓰고 지휘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우리의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더 큰 고민이 있다. 바로 '옛것에 어떻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고전의 단단한 유산 위에 시대의 새로운 질문을 얹지 않으면, 그 음악은 결국 박물관 유리장 안의 전시품으로 남을 뿐이다. 남들과 똑같은 해석,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함만으로는 이미 냉정하게 돌아서 있는 관객의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없다. 평단의 까다로운 시선을 견뎌내고 예술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도박을 하듯 완전히 새로운 조합을 찾아 수만 가지 재료를 섞어본다. 바흐의 경건함 옆에 현대의 파격적인 화성을 놓아보기도 하고, 수백 년 전의 멜로디에 지극히 계산된 지적 전략을 얹어보기도 한다. 독창적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무대 위에서, 독창성은 사치가 아니라 유일한 생존의 호흡법이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짊어진 운명인 것을.

오늘도 오선지 위에서, 그리고 저 낡은 다락방 같은 사유의 방 안에서, 세상의 온갖 것들을 씹고 뜯고 맛본다. 피곤하고 지치는 직업병임엔 틀림없지만,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마침내 하나의 완벽한 화음으로 피어오르는 그 경이로운 순간이 있기에—우리는 기꺼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잡식가로 남기를 선택한다.

              

 

정현구 지휘자,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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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명인 
 자연의학명예박사
 구리클래시컬플레이어즈 음악감독, 지휘자 
 한국체육교향악단 음악감독, 지휘자 
 광복회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지휘자 

 
 
정현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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