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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향기] 나에게 엄지 척 - 지설완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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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엄지 척_ 지설완 수필가

  나에게 엄지 척 

  지설완

    엄지를 치켜든 그림이 스쳐간다. 자동차 타이어 광고다. 누군가에게  엄지를 세우고 최고야 하는 듯하다. 최고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유치원생과 보드게임이라도 하게 될 때 그 어른들이 일부러 져주는 줄도 모르고 이겼다고 좋아한다. 이기지 못하면 삐치고 화를 낸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꼬마도 '일등', '최고'는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방과 후 수업을 할 때, 효과적인 수업 진행을 위해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역할극을 하게한다. 오 분 정도 시간을 주고 조 별로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표현하게 한다. 학생들은 역할극을 하고 나면 그 책의 내용을 재미있고 쉽게 이해한다. 

 

    문제는 아이들이 각자 자기가 주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주인공이 되려고 하는 그 기개는 높이 살만한 일이지만 한정된 시간에 수업을 맞춰야 하니 난감하다. 일인자만 되겠다고 하고 주변 인물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조연들은 자기의 역할을 하면서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꼴찌에게 박수를'이 통하지 않는다. 

   

    나도 그 꼬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교 축제 행사로 과별로 무대를 꾸며야 했다. 우리 과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나도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다. 주연을 준다고 해도 손사래 치겠지만 '조연 3'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했다. 늘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나도 그 정도는 하겠지. 배역 과정에서 나에게 극 중 한마디도 없는 노파역이 주어졌다. 나는 그럴 바에는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연극 참여를 포기했다. 큰 책임을 지는 주연은 싫지만 별로 책임은 지지 않는 그러면서도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조연 3'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단체에 따라 대표 선출에 경쟁이 심한 곳이 있지만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곳도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강제로 내게 넘긴다.  어쩔 수 없이 회장이 되면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전전긍긍하며 단체를 이끈다. 물론 나도 멋진 '대표'가 되고 싶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되묻고 싶다. 노력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최고', '일등'을 갈망하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는 없다. 멋있고 화려한 옷이라고 해도 맞지 않으면 포기해야 한다. 편하고 조금은 내가 빛나 보이는 그런 옷을 입어야 한다. 

  

    나는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가끔은 세상이 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상처를 받으면 받는 대로, 일이 좀 잘 풀려 세상이 조그마해 보이면 좀 잘난 척도 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손녀는 내가 해주는 음식이 본인 입에 맞으면 그 자그마한 엄지손가락을 척 세운다. 손녀의 '엄지 척'이 즐겁다. 엄지 척은 누군가에게 기운을 주고 더 할 수 있다는 힘을 준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좀 더 발전한 나를 대견해 하면서, 나에게 자가(self) '엄지 척'을 해야 하지 않을 까.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지금의 나에게 '엄지 척'을 하고 싶다. 

   [작가의 생각] 

     

    자신에게 '엄지 척'을 해주고 싶은 작가님.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자신에게 칭찬으로 '엄지 척'을 해주고 싶어합니다. 지작가님은 앞에 잘 나서는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존재감 없는 사람은 되기 싫었습니다. 손녀가 '엄지 척'을 해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연말에 시상식이 풍성합니다. 그만큼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상을 받습니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지 조연은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 노력을 합니다. 

 

    매일 쏟아지는 카톡이 서로의 안부와 사랑의 마음도 전해줍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엔 편지로 공중전화로 전하느라, 우체통도 열어보고 소식을 마냥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카톡으로 소통하며 사는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해서 나를 잠시 뒤로 하고 좋은 글을 전하기도 하고, 좋은 음악이 있으면 같이 듣고 싶은 마음에 또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서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수없이 올라오는 카톡을 우리는 읽기도 하고 미처 읽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매일 올라오는 수많은 사연들은 누군가 가 읽어 주길, 좋은 음악을 들어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참 바쁘기도 합니다. 또 카톡방이 하나 둘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 때로는 읽히고, 때로는 잊혀집니다. 카톡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읽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올리는 '엄지 척'과 '하트'는 나의 마음을 전하고, 게시자에게 힘을 주고, 카톡방의 분위기도 살려줍니다. 나의 게시물이 '엄지 척'이나 '하트'를 받으면 사실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받은 '엄지 척'이나 '하트'를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면 어떨까요? 마음에 드는 다른 게시물에 올려주는 겁니다. 

    

    좋은 내용을 올리고 거기에 하트나 엄지 척을 붙여준다면 서로 좋은 일이겠지요. 하트나 엄지 척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카톡방을 보는 것은 너무 우울하고 가슴 한 편이 쓰라립니다. 많은 게시물이 갈 곳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입니다. 읽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 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유령도시 같습니다. 사람은 있는데 보이지 않는. 

 

    자신의 게시물을 올리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는 전혀 관심을 표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게시물은 봐주길 바라고, 다른 사람의 게시물은 관심 없다는 뜻일까요? 

 

    게시물은 왜 올리는 걸까요. 누군가 가 보고,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겠지요 

    좋은 내용을 주거니 받거니 해야 서로 대화가 되듯이, 상대방의 게시물에 관심과 사랑을 표하며 카톡방이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지금 카톡방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외로울까요? 대가족이 해체되면서 우리는 외로워졌고, 그 텅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카톡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누가 나의 안부를 묻고, 좋은 글을 보내주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겠어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모두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거나 웃는 얼굴을 마주하거나 따뜻한 격려나 위로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상대방의 따뜻함이 굳어있는 나를 녹여주고 부드럽게 해줍니다. 

   

     '엄지 척'과 '하트'는 마음을 전하고, 게시자에게 힘을 주고, 카톡방에 생기가 돌게 합니다. 

     

     카톡방의 온기를 위해 누군가의 게시물에 *먼저* '하트'나 '엄지 척'을 눌러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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