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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30】 정희경의 "독수리"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30】 정희경의 "독수리"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독수리 / 정희경 이미지: 강영임 기자
독수리 / 정희경 [이미지: 강영임 기자]

독수리

 

정희경

 

 

안으로 굽은 발톱 사냥을 할 수 없어

길게 휜 늙은 부리 가슴을 파고 든다

더 날자 다시 날아야 해 가장家長의 몸부림

 

벼랑에 몸을 던져 바위에 부릴 갈고

발톱도 헌 깃털도 티눈인 양 뽑아낸다

태양은 피를 흘리며 내일을 떠오르지

 

닫혔던 가게 문을 두드리는 심장 있어

구조조정 거센 바람 마주하고 다시 난다

독수리 웅크린 발톱 낚아채는 허공의 끝

 

《益山時調》 (2025. 상반기호)

 


생의 중반에 이르면 갱신(更新)의 시간을 갖는 새가 있다.

 

독수리는 부리와 발톱이 닳아 사냥이 어려워지면 절벽이나 바위틈에 몸을 숨긴다. 무거운 깃털은 하나하나 쪼아내고 부리와 굽은 발톱은 스스로 갈고 뽑아내, 다시 돋아날 새 부리와 발톱을 기다린다.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 후 이력서를 수십 번 내밀 고도, 돌아오는 것이 냉랭한 거절일 때 가장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여전히 날 수 있을까. 낡아버린 경력, 시대에 뒤쳐진 기술이 어깨위로 내려앉아 독수리 발톱처럼 무뎌진다. 그러나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내일을 붙들고자 하는 희망은 그를 다시 절벽 앞으로 이끈다. 그 순간 독수리와 다르지 않다. 스스로 쪼아대며 새로운 부리와 날개를 기다리는 시간,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독수리는 쉽게 날아오르지 않는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며, 온몸으로 균형 잡고 허공을 뚫어야만 한다. 바람을 붙잡으면 누구보다 높이 오랫동안 날 수 있다. 퇴직과 재취업 사이 무너짐과 일어섬 사이의 마음은 절벽만큼 아득하지만, 닫혔던 가게 문을  두드리는 순간 또 다른 생의 날갯짓이 시작된다.

 

「독수리」는 한 마리 맹금류의 날갯짓을 넘어, 삶의 곤두박질과 다시 일어서려는 가장의 몸부림을 겹쳐 보이게 설정했다. 더욱이 절망을 비상(飛上)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상징성, 실존적 고투(苦鬪)를 담아낸 극적인 긴장감,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끌어안는 언어의 이중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쩌면 삶이란 끊임없이 독수리의 쇄신을 반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직장에서의 좌절, 인간관계의 단절, 예기치 못한 질병과 상실 그것들은 우리의 발톱을 무디게 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자기 쇄신을 통과한 사람만이 다시 새로운 힘과 눈으로 세상을 마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여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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