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8] 송기원의 "여수 앞바다"
여수 앞바다
송기원
스무 살 무렵에 저는 세상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줄 곳이 없는 망망한 그리움과
죽어 있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것같이 부끄럽기만 한 삶으로
여수 앞바다에 갔었습니다.
겨울이었고, 바닷바람이 추웠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허름한 여인숙에 들었는데,
엷은 베니어판으로 막아놓은 옆방에서는 해수병이 든 늙은 여자가
밤새껏 숨이 끊어질 듯한 기침과 함께
물엿 같은 울음소리를 내었습니다.
병들어 더 이상 몸을 팔 수 없게 되어버린 창녀는 아니었는지요.
기침소리와 울음소리가 멈추면 저는 오히려
더욱 불안해하며, 노트를 펼쳐놓고 밤새워 시를 썼습니다.
‘퇴폐시풍’이라는 연작시였는데요.
갯벌, 물결, 섬, 갈매기 등이 작은 제목이었습니다.
그런 시라도 쓰지 않으면 정말이지 옆방의 늙은 여자보다도 제가
먼저 죽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서른 살도 훨씬 지나서 마흔 살이 가까운 나이에 저는
다시 여수 앞바다에 갔습니다. 머리는 거의 다 빠져 절반쯤
대머리가 된 중년의 사내가 이번에는 무슨 시를 쓰기 위해 간 것일까요.
역시 겨울이었고, 바닷바람이 추웠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허름한 여인숙에 들었는데,
옆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제 자신의 물엿 같은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도둑처럼 자꾸만 당신의 삶을 훔치려 드는 스스로가
밤새껏 가여웠습니다.
—『마음속 붉은 꽃잎』(창작과비평사, 1990)

[해설]
그녀의 기침소리와 울음소리
기원이형! 아니, 송기원 선배님!
7월 31일이 1주기 기일이었는데 제가 깜빡 잊고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송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선배님과 저의 비밀이 있지요.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에 출강하신 몇 년 동안 저는 선배님과 점심을 꼭 같이 했습니다. 두 사람 다 대구탕을 좋아하는데 무진장 허름하지만 잘하는 집이 학교에서 차로 30분쯤 가야 있었지요. 선배님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타고 조수석에 앉아 말도 안 되는 객설을 늘어놓으면 잘 받아주셔서 오가는 한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온천이 유명한 유성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선배님께 배운 것은 자세 낮추기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고려대 주최 전국 고교생 백일장에 시가 당선되었고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면 콧대가 지붕을 뚫었을 겁니다. 중대 문창과 휴학 후 베트남전에 다녀왔지요. 28세 젊은 나이인 1974년 같은 해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는데 이 기록은 우리 문단사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시와 소설이 같은 해에 중앙일간지 두 군데에 동시에 당선된 예는 제가 아는 한 선배님밖에 없습니다. 김우창, 이형기 시 심사위원은 “이런 시를 읽을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심사평에다 썼습니다. 저 같았으면 콧대가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선배님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사로 나섰습니다. ‘긴급조치 복학생’이란 이름으로 복학한 1980년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지요. 당시 78㎏ 나가던 몸무게가 48㎏로 줄었다고 했습니다. 1970~80년대 자유실천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적을 두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였고 1985년 ‘민중교육 필화사건’으로 또 한 차례 구속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저서의 수가 33권, 빠진 것도 있으니 거의 40권은 될 것입니다. 그중 시집은 4권인가요?
이 시의 이야기는 100% 사실입니다. 선배님 자신이 그 이야기가 나중에 소설 「늙은 창녀의 노래」가 되었고 소설을 희곡 「늙은 창녀의 노래」로 각색해 수십 차례 공연이 되었다고 말했으니까요. 허름한 여인숙의 장기 투숙자인 ‘늙은 여자’는 해수병을 앓아 기침을 밤새 하는데 울음소리가 같이 들립니다. 기침하다가 울고, 울다가 또 기침하고. 선배님은 화를 내면서 벽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여인숙 주인을 불러 항의도 하지 않은 채 마음속에 붉은 꽃잎을 피우면서 밤새 시를 썼다고요. 갯벌, 물결, 섬, 갈매기라는 제목으로.
세월이 꽤 흘렀습니다. 그녀가 지금 살아 있을까? 선배님은 다시 여수 바닷가에 있는 그 여인숙에 가보았지만 그녀도, 그녀의 흔적도, 그녀에 대한 소문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하는 수 없다. 그녀를 살려내자. 소설로 쓰자.
도둑처럼 자꾸만 당신의 삶을 훔치려 드는 스스로가 밤새껏 가여워서 울었고, 실컷 울고 나서 이번에는 시가 아니라 소설로 썼습니다. 단편소설로 썼지만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녀에 대한 초상화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무대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 연극은 연극계에서 많은 상을 탔고, 사람들의 폐부를 찔렀고, 심금을 울렸습니다. 연극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선배님 소설의 탁월한 미학적 성취는 시를 공부하고 시를 썼기 때문이지요.
선배님, 납작한 이과두주 한 병 뒷포켓에 꽂고서 세종은하수공원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먼저 간 따님이 보고 싶다고 간혹 말씀하셨는데 같이 지내고 계신지요? 잘못된 시대와 싸운 투사였으면서도 소설을 줄기차게 쓴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아마도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자세로 살아오신 그 겸손함, 그리고 소설에 대한 끈질긴 구도적 자세, 인간에 대한 관용과 사랑이 원동력일 겁니다. 저는 언제쯤 선배님의 자신을 낮추는 그 자세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아, 오늘이 8월 5일, 이 땅은 지금 찜통입니다.
[송기원 시인]
194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2024년 7월 31일에 작고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경외성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마음속 붉은 꽃잎』『저녁』『단 한 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