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그린 그림 12] 내 마음 속 새 / 이상옥 시니어 화가

도화지가 아닌, 지나간 달력의 뒷면. 그 위에 펼쳐진 한 마리의 새는 이상옥(86세) 할머니가 그린 상상의 생명이다. 그림을 시작한 건 80대 초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예술적 야망이나 계획된 창작이 아닌, 아주 엉뚱하고도 따뜻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8남매를 다 키우고 나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폐지를 주우며 소일하던 할머니는 어느 날 오토바이와 접촉사고를 당해 집에서 쉬게 되었다. 자식들은 무료함을 걱정해 데이케어 센터에 모셨지만, 할머니는 그곳을 요양원으로 오해했다. “내가 뭔가 열심히 하면 안 보내겠지”라는 마음으로, 집에 있던 달력의 뒷면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첫 그림은 서툴렀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림은 점점 늘어났고, 가족들이 SNS에 올린 그림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불러왔다. 사람들은 그 그림에서 기술보다 진심, 정교함보다 용기, 완성보다 시작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렇게 83세에 첫 전시회를 열었고, 이후 두 번째 전시 〈동물의 왕국〉까지 이어지며 이상옥 할머니는 ‘시니어 화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내 마음속 새〉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작품이다. 평소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할머니는 기억에 남는 동물들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를 그렸다.
핑크빛 몸통에 커다란 노란 눈, 초록색 날개와 붉은 부리. 형태는 정교하지 않지만, 그 안엔 생명과 감정이 살아 숨 쉰다. 색의 선택은 자유롭고 대담하며, 비례나 구도보다 마음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림만 봐서는 어떤 새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모호함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고,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색감과 형태는 보는 이에게 따뜻한 미소를 선사한다. 달력이라는 일상의 흔적 위에 펼쳐진 이 그림은, 예술이란 특별한 재료나 배경이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내 마음속 새〉는 ‘못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며,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창작은 시작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이상옥 할머니의 그림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그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내 마음 속 새〉는 기술보다 용기, 완성보다 시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 공동기획 : 코리아아트뉴스. 학생신문]
[ 후원 : 부천 모지리카페, 세라모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