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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2] 윤범모의 "거꾸로 매달린 호랑이"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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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매달린 호랑이

 

윤범모

 

해남 대흥사 침계루의 처마 밑

참으로 별난 벽화 하나가 있는데요.

글쎄, 호랑이가 거꾸로 묶여 나무에 매달려 있네요.

그것 참, 호랑이가 벌 받고 있다니!

 

절에서 살생 금지는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호랑이 녀석은 법회 때마다 내려와

어슬렁거리다 계곡의 가재를 즐겨 잡아먹었답니다.

이를 본 스님께서 호랑이를 불러 야단쳤습니다.

아무 데서나 목숨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호랑이는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빌었겠지요.

다음 법회에 또 나타난 호랑이

가재를 잡아먹다가 스님께 들켰습니다.

이에 스님은 호랑이를 잡아 커다란 나무에 거꾸로 매달았습니다.

벌서고 있는 호랑이!

오늘도 침계루 벽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네요.

이렇듯 별난 이야기가 사찰 벽화에 남아 있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요.

가재 몇 마리 잡아먹고 평생 거꾸로 매달려 벌서고 있는 호랑이.

 

뭐요?

처사님은 그런 그림 보러 갈 자신조차 없다고?

,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가재 몇 마리 때문에 호랑이가 벌서고 있는데

사람 탈까지 쓰고 저지른 못된 짓 너무 많아 움찔움찔 겁난다고?

그래서 대흥사 근처에는 얼씬거릴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것 참.

거꾸로 매달린 호랑이만도 못한…

 

허허허.

 

―『화택』(예술시대, 2025) 

거꾸로 매달린 호랑이 _ 윤범모 시인

  [해설]

 

  시집 『화택(火宅)』은 반문명, 반공해, 반멸종에 엄중한 항의의 시편을 모은 시집인데 예외적인 시를 골랐다. 이야기시()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민담, 설화, 전설, 우화 등이 고장마다 없는 곳이 없다. 단군신화도 이야기성()이 참으로 풍부하다. 백석의 『사슴』과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고은의 『만인보』, 신경림의 『농무』,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김영승의 『반성』,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같은 시집은 세상사 온갖 이야기가 쌓여 있는 창고였다. 수많은 사연이 나오기에 그 서사에 빨려 들어가 시의 재미를 만끽하게 된다.

 

  「거꾸로 매달린 호랑이」 속의 이야기가 시인이 지어낸 것인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우화는 참 재미있다. 절 근처에 있는 계곡의 가재를 잡아먹다가 스님에게 들켜 커다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호랑이 이야기는 사실주의 관점에서 보면 얼토당토 아니한, 순 거짓말이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해학과 골계 속에 교훈이 들어 있다.

 

  윤범모 시인은 이야기를 제시하고 나서 해석한다. 우화는 결국 동물을 끌어들여 이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재 몇 마리 때문에 호랑이가 벌서고 있는데/ 사람 탈까지 쓰고 저지른 못된 짓 너무 많아 움찔움찔 겁난다고?”라고 말하면서 우리 인간의 됨됨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거꾸로 매달린 호랑이만도 못한우리 아니냐고. 전쟁을 일으켜 자기 나라 젊은이들 수만 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연쇄살인, 묻지 마 살인, 가족 살인……. 살생유택(殺生有擇)이 세속오계의 하나였다. 베네수엘라에서 총성이 하루빨리 멎기를 바란다.

 

  [윤범모 시인]

 

  200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고먼 해우소』『토함산 석굴암』『바람 미술관』, 시선집 『파도야, 미안하다』를 냈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명예석좌교수. 20, 21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가천대학교 예술대 교수,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 연구교수, 광주 비엔날레 창립 집행위원,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초대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역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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