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18] 임성화의 "축 사망" 외 2편

축 사망
임성화
눈치가 바닥인 남편
머쓱한 말과 함께
결혼일 기억하고
불쑥 내민 꽃 한 다발
아내는 붉으락푸르락
흰 국화로 타작했다
장바닥 시편
할배요 함 잡사 보소 요강 깨는 명약임더
산삼은 저리 가라고 날새는 줄 모릴낌더
그라마 당신이 묵지 뭐할라꼬 무라카노
대답
둥글게 휘는 허리 별일 없나 물었더니
팔순 된 큰언니는 세월이 말한단다
아파도 견디다 보면 그게 바로 명약이래
―『반구천 암각화』(목언예원, 2024)
[해설]
눈물과 웃음을 다같이
평소에 눈치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것이 아닌 남편이 결혼기념일이라고 사 온 꽃이 국화다. 흔히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꽃이 국화이기에 무심히 뱉은 말이 “여보! 축 결혼!”이 아니었다. 말이 헛나왔다. “축 사망.” 아내는 화가 나 그 국화꽃을 벽에다 냅다 때려 산산이 흩어지게 했다. 이 양반아! 그렇게 새장가 들고 싶냐!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얼마나 유머러스한 장면인가. 그 집의 남정네는 열흘은 싹싹 빌었겠다.
예전에는 장터를 돌아다니던 약장사들이 제일 많이 판 것이 구기자 성분의 정력제였다. 요즘 치면 비아그라쯤 되는 약을 파는 것이었는데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얘들아, 너희들은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저리 가거라.”였다. 초장과 중장은 장사치가 하는 말이고 종장은 구경꾼이 하는 말이다. 구경꾼이 정력제 파는 약장사를 보아하니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당신이나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요강 깨지 뭐하러 여기에 와서 이 고생이냐고 은근히 놀린다. 이 시조도 앞의 작품과 골계미가 막상막하다.
세 번째 작품은 결이 다르다. 팔순 된 큰언니가 허리가 아프다 아프다 하는데 약을 써도 듣지를 않는다. 그래도 동생은 큰언니가 걱정되어 허리가 요즘 어떠냐고 묻는 것인데, 그 언니는 참는 게 명약이라는 명대답을 한다. 세월 이기는 장사 어디 있느냐, 그냥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임성화 시조시인의 세 번째 시조집에는 이런 단형시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수, 세 수로 된 것들도 있는데 다 인생살이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慾) 중 하나는 진하게 느낄 수 있게 해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시인 특유의 해학성과 골계미는 우리 시조시단에 부족한 것이라 내심 옳거니!를 연발하게 했다.
[임성화 시인]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중부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경주대학교대학원에서 문화재 석사과정을 마쳤다.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고 2004년 《문예사조》 동시 신인상을 받으면서 아동문학을 겸하게 되었다. 성파시조문학상, 울산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아버지의 바다』『겨울 염전』, 동시조집 『뻥튀기 뻥야』를 펴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