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은 시조 4 ] 호박꽃 _ 고정국

고정국
무심결 오줌을 누다
날 보면 없었던 일처럼
[시조 읽기]
민망함을 시로 피워낸 꽃, 그리고 침묵의 너그러움
류안 시인
고정국의 시조 「호박꽃」은 일상의 민망한 순간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인은 무심결에 오줌을 누다 담장 너머 호박꽃 너머의 시선에 들킨 경험을 중심으로, 그 이후 꽃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시조의 가장 큰 매력은 호박꽃의 의인화에 있다. 화자는 자신이 들킨 이후, 그 꽃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자신을 인식하며, 마치 꽃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러 / 부러 / 하품만 / 한다.” 이 반복적인 표현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꽃이 시치미를 떼며 모른 척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힌다. 이는 꽃이 감정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묘한 교감을 형성한다.
시인은 짧은 행간 속에 유머와 감성을 절묘하게 배치한다. 민망함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꽃과의 시선 교환, 침묵, 그리고 하품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풀어내는 방식은 독창적이다. 특히 마지막 연의 리듬감 있는 반복은 어색함과 무심함을 동시에 표현하며, 독자에게 웃음과 여운을 남긴다.
「호박꽃」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인간의 감정이 자연에 투영되고, 자연이 다시 그 감정을 되비추는 시적 장면을 만들어낸다.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 작품은, 일상의 순간을 시로 끌어올리는 고정국 시인의 감각이 돋보인다.
어쩌면 이 시조는, 호박꽃처럼 나의 실수를 조용히 덮어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른 척해주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말없이 지나쳐주는 너그러움, 침묵 속의 이해, 그리고 하품처럼 가볍게 넘겨주는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이 시의 여운을 더욱 깊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