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52】정상미의 "종소리의 습도"
종소리의 습도
정상미
N선생의 생일이야
알림종이 붉었다
그분은 우주로
거처를 옮겼는데
프사의
웃는 얼굴이
는개녘에 떠 있다
《나래시조》 (2025.겨울호)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던 때가 있었다. 자꾸만 문밖을 기웃거리나 빨간 우체통을 보면 멈춰 섰던 시간,이런 기다림은 발효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종소리를 듣지 못한다. 제목인 「종소리의 습도」는 소리가 아니라 감정의 상태를 가리킨다. 울림은 분명한데 맑게 퍼지지 못하고 어딘가 달라붙어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아두려 한다.
시작은 놀랄 만큼 일상적이다.
“알림종이 붉었다” 휴대전화 화면에서 생일을 알리는 알림은 흔히 마주치는 축하의 신호다.그러나 이 붉음은 축하보다 경고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불편하다. 축하와 불길함이 같은 색으로 보여지는 순간 삶의 질서는 미묘하게 흔들린다.‘N선생’은 한 개인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분은 우주로/거처를 옮겼는데” 이 시에서 죽음은 한 번도 발화(發話)되지 않는다. 그러나 ‘거처를 옮겼다’는 죽음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한다.슬픔을 줄이기 위한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상실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주소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말 속에는 이제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또렷하게 숨어있다. 우주는 가장 멀리 있는 장소이자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이다.화자는 죽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거리로만 남겨둔다.
“프사의/웃는 얼굴이/는개녘에 떠 있다” 프로필 사진 속 웃는 얼굴은 현재형이다. 이미 떠난 이는 날짜가 고정된 채 여전히 웃고 있다. ‘는개’는 안개비 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 보다 가는 비를 뜻하는 고유어이다. 는개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때 프로필 사진 속 정지된 웃는 얼굴에서 화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종소리의 습도」는 슬프지만 울부짖지 않으며 비탄을 드러내는 대신 알림과 프로필 사진,주소 이동 같은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미학이 있다. 그 일상적인 언어들은 슬픔의 감정을 오히려 증폭 시키는 역할을 한다. 울리는 종소리는 습기를 머금어 멀리 퍼지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물성으로 바꾼 점이다. 종소리에 습도를 부여하는 순간 소리는 추상에서 벗어나 공기 속에 머문다. 이때 말하지 못한 슬픔은 공기 속에 머물다 자발적으로 독자의 호흡으로 옮겨간다.
우리는 가끔 부고 알림을 단체 톡 방에서 받을 때가 있다. 유족들이 떠난 자의 부고를 톡으로 보내온 것이다.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웃고 있는데 부고 알림을 받는 순간 가슴 저려온다.
가끔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이 귀찮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끝없이 울리는 알림은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하는 살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강영임 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