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48] 김겸의 "누이 생각"
누이 생각
김겸
저 맵찬 바람을 맞으며 견딘 시간이
저 날선 바람에 몸을 삭이며
부대낀 시간이
저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늑골에 스미면
인가의 불빛들조차 고개를 돌려
차갑게 명멸하고
곁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삭풍으로 몰려오는
저 바람이 나를 몰아세우네
구원 없는 생이 있다면
저 날선 바람에 맞선 세월의 늑골
구멍 난 시간의 잔해
저 바람이 궁벽한 생을 파고들어
고픈 배 움켜쥐고 입김 뿜던 냉골의 방바닥을
기어코 되새김하게 하고
울지 말아라, 씩씩하게 지내라,
말하던 누이의 목소리가
저 끝에서 여기까지 달려오네
삭풍 한 번 휘몰아오면, 울지 말아라
휘몰려간 그 바람 다시 내게 씩씩하게 지내라
차고 맑은 그 목소리 바람에
바람에 불려오네
한참 전에 되돌려 주었어야 할 그 바람이
바람 되어 자꾸만 불어오네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여우난골, 2022)

[해설]
누이는 누이동생일 수도 있고 누나일 수도 있는데 화자에게 “울지 말아라, 씩씩하게 지내라”고 말하는 걸로 봐서 누나 같다. 남매는 어린 시절에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다. ‘냉골’을 요즘 아이들이 알까? 겨울에 방바닥이 싸늘한데 잠을 자야 한다. 게다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잠을 억지로 자야 한다. 부모는 어디에 간 건지 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화자는 누나가 유일한 의지처고 누나는 남동생이 유일한 기대주다.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 그 작은 배를 타고 있는 나와 누이. 헤치고 나아가야 할 세파는 너무나도 무섭고 험하다. “한참 전에 되돌려 주었어야 할 그 바람이/ 바람 되어 자꾸만 불어오네”로 마무리했는데 앞의 바람은 希요 뒤의 바람은 風이리라. 얼마나 다행인가. 나에게 누이가 있으니. 누이에게 남동생이 있으니. 파도야 얼마든지 쳐라. 나는 견딜 수 있다고, 씩씩해질 거라고 김겸 시인이 외치고 있다. 강릉에 가서 술이라도 한 잔 사고 싶다.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누이를 몇 번 등장시킨 적이 있었다. 내 불면의 진원지에서 고통의 쓰나미를 사흘에 한 번꼴로 일으키는 존재인데 이 시를 읽었으니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으랴. “인가의 불빛들조차 고개를 돌려/ 차갑게 명멸하고/ 곁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삭풍으로 몰려오는/ 저 바람이 나를 몰아세우네”를 읽고 고개를 몇 번 끄덕였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누이는 천사다. 그런데 그 누이가 지금 소금기둥이 되어 있다. 돌아보았다는 것이 무슨 큰 죄라고.
[김겸 시인]
본명 김정남.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김겸’이라는 필명으로 시가 각각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펴낸 책으로 문학평론집 『비평의 오쿨루스』, 소설집 『잘 가라, 미소』(2012년 우수문학도서),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 Hommage to Route7』(2014년 우수문학도서), 학술서 『도시는 무엇을 꿈꾸는가』(2022년 세종도서 학술 부문 선정), 시집 『바로 그 어둠이 심연이었네』 등이 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VERUM교양대학에 재직하며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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