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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61] 박해경의 "밥이 약" 외 1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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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약

 

박해경

 

할머니는

엄마가 떠난 날에도

밥을 먹으란다.

 

눈물이 밥 위에

뚝뚝 떨어져도

숟가락을 들라고 한다.

 

밥이 약이다.”

밥이 견디게 해준다.”

 

목이 메어

목구멍에 걸려도

삼키란다.

넘기란다.

 

그렇게 한 숟갈

또 한 숟갈

밥을 약처럼 먹는다.

눈물 얹어 꿀꺽 삼킨다. 

밥이 약 _박해경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관심 꺼 주세요

 

나는 203호 아이

그렇게 불렸어요.

 

이제는

엄마 없는 아이

라고 불려요.

 

이름도 있는데

왜 자꾸 그렇게 부를까요.

 

사람들의 눈빛

괜찮니?”

힘들지?”

속닥속닥 쏟아지는 말들

관심이 더 힘들어요.

 

그냥 조용히

두면 안 될까요?

 

―『내 이름은 기다려』(초록달팽이, 2025) 

관심 꺼 주세요 _ 박해경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참으로 슬픈 두 편의 동시

 

  박해경 시인의 두 편 동시에 나오는 아이는 나이가 어린데 엄마랑 그만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엄마에게 병마가 찾아왔는데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아이 곁을 떠나고 만 것이리라. 밥을 앞에 두고 울기만 하는 손자에게 할머니는 밥이 약이다.” “밥이 견디게 해준다.”고 말하며 먹기를 재촉한다. 그러자 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밥을 먹는다. 억지로 한 숟갈 두 숟갈 삼킨다. 참 슬픈 장면이다.

 

  203호에 산다고 203호 아이라고 불렸는데 엄마가 돌아가시자 엄마 없는 아이로 불린다. 물론 어른들이 아이가 듣는 데서 큰소리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멀찍이서 수군대는데 아이의 귀에 들어가고 만 것이리라. 사람들의 눈빛이 어떠하다는 것도 아이는 안다. 친구들도, 친구들 부모도, 어린이집이나 학교 선생님들도, 아파트 이웃 주민도 동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무어라 속닥속닥 얘기하니 더욱 기분이 우울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춘천신천학교(춘천소년원)에 갔을 때 아이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혹은 어머니의 재혼으로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것은 집이 사라진 것이며, 기댈 언덕이 사라진 것이며, 천국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혀를 찰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힘을 불어넣어 줄지, 용기를 심어줄지,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 연구해야 한다. 이런 것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이 동시 속의 아이는 나를 그냥 조용히 둬 달라고 한다. 마음으로는 와락 껴안고서 기운 내라고 외치고 싶다.

 

  [박해경 시인]

 

  울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2014년 《아동문예》 신인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 울산광역시 문화예술육성 지원사업 문학 부문에 선정되어 첫 동시집 『딱 걸렸어』를 출간했다. 디카시에도 흥미를 가져 이병주디카시, 고성디카시, 황순원디카시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2018년 울산광역시 예술로 탄탄 지원사업 문학 부문에 선정되어 두 번째 동시집 『두레 밥상 내 얼굴』을 출간했으며 이 시집은 올해의 좋은 동시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9년 울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에 선정되어 울산 사투리 동시집 『하늘만침 땅만침』을 출간했고 2021년 울산 사투리 동시집 『우끼가 배꼽 빠질라』는 울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에 선정되었다. 디카시집 『삼詩세끼』는 이시향, 박동환 시인과 함께 출간했다. 『우끼가 배꼽 빠질라』에 실린 「버들나무 우듬지」로 2021년 한국안데르센상 창작동시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디카시집 『달을 지고 가는 사람』으로 제2회 디카시 계관시인상 국내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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