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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28] 김강호의 "터널의 식사"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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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의 식사 — 어두운 시대로 빨려드는 무기력한 인간들

터널의 식사

 

김강호

 

 

매끈한 김밥들을 쉼 없이 삼키며 살지

 

둘둘 말린 내용물엔 다소곳한 인간들

 

 

오늘은

 

뱉고 싶었어

 

전쟁 소식

 

씹혀서 

터널의 식사 _ 김강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좀 엉뚱 맞은 시적 발상이다. 좋게 말하면 터널을 통해 상상력을 동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뒤 비극의 서막을 알릴 때 떠오른 시상을 잡아두었다.

 

  터널은 언제나 열려 있는 입이다. 터널은 무서운 식욕을 자랑하는 거대한 입을 가진 동굴이다. 터널은 문명의 입을 암시한다. 터널은 잘 포장된 김밥을 삼키고, 그 속에 내장된 인간들의 생각과 감정마저 소화해버린다.

 

  ‘둘둘 말린 내용물이란 결국 각자의 꿈, 분노, 목소리를 감춘 인간의 초상이며, 거침없이 삼켜 버리고 싶다는 게 터널의 고백이다.
 

  그동안 터널은 끊임없이 먹고 있었다.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 끝없는 탐욕, 그리고 전쟁 소식까지. 그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터널은 여전히 기차라는 김밥을 즐겨 먹으면서도, 향기롭고 식욕이 돋는 평화에 포만감을 느낄 것이지만, 아무리 허기져도 전쟁이라는 악마는 삼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단박에 뱉아버리고 싶은 것이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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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시인#시조아카데미#터널의식사#시조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