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옹 펙, 도쿄 난즈카에서 개인전...‘월하계의 잊힌 신비’로 동시대 감수성 조명
미국 작가 마리옹 펙(Marion Peck)이 오는 4월 11일부터 5월 16일까지 도쿄 NANZUKA UNDERGROUND에서 개인전 《Forgotten Mysteries of the Sublunar Realm》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2년 같은 공간에서 열린 일본 첫 개인전에 이은 난즈카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의 신작 회화 세계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마리옹 펙은 196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나 시애틀에서 성장했으며,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학사를 마친 뒤 시라큐스대학교와 템플대학교 로마 캠퍼스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1990년 워싱턴주 올림피아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샌프란시스코, 뉴욕, 로마,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펙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형성된 로우브로우 아트(Lowbrow Art)와 그 확장 흐름인 팝 초현실주의(Pop Surrealism)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된다. 특히 로버트 윌리엄스가 창간한 『Juxtapoz』와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미국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주요 인물들과의 연결 속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는 단순히 특정 미술 운동의 일부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펙은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회의와, 그로부터 비가시화된 감수성의 회복을 회화적으로 탐색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번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월하계(The Sublunar Realm)’는 고대 서양 점성술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태양의 질서와 명석함에 대비되는 달의 세계, 곧 변화와 직관, 꿈과 신비가 살아 있는 영역을 뜻한다. 펙은 전시 서문을 통해 현대 문명이 과학적 실증주의와 이성 중심주의 속에서 ‘신비’를 경시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달적(Lunar) 의식과 여성적인 가치가 지속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바로 이처럼 빼앗긴 장소와 감각에 다시금 가치를 돌려주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스스로를 직접적인 ‘페미니스트 아트’의 기치 아래 두지는 않지만, 자신의 예술이 이른바 여성적인 것으로 불려온 가치들에 대한 찬미와 경의의 표현이라고 밝힌다. 영웅적 서사나 압도적 장관보다, 사적인 공간에서 감상자와 친밀하고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회화를 지향한다는 점은 마리옹 펙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언어로 명확히 설명 가능한 메시지보다, 설명되기 이전의 정서와 감응, 그리고 신비 자체를 지켜내려는 태도가 그의 회화 세계를 관통한다.

전시에서는 작은 목판 위에 그린 신작 유채화 21점이 공개된다. 정교한 묘사와 성스러운 분위기를 머금은 화면은 15~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종교화를 연상시키며, 동시에 펙 특유의 몽환적이고 기이한 상상력을 드러낸다.

의인화된 동물, 큰 머리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해 자애, 보살핌, 대화 등 ‘케어(Care)’의 몸짓을 나누는 장면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젠더 기반 역할 규범 속에서 과소평가되어 온 ‘월하계적 가치관’의 회복 가능성을 암시하는 장면으로도 읽힌다.

이번 개인전은 마리옹 펙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환상적 회화 세계를 넘어, 동시대 사회가 잃어버린 감수성과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다시 사유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질서 밖에 놓였던 신비와 직관, 돌봄과 여성성의 상징들이 어떻게 회화 속에서 복원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될 전망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Forgotten Mysteries of the Sublunar Realm》
- 작가: 마리옹 펙 (Marion Peck)
- 기간: 2026년 4월 11일(토) – 5월 16일(토)
- 장소: NANZUKA UNDERGROUND
(도쿄도 시부야구 진구마에 3-30-10)
운영: 화요일–토요일 11:00–19:00 / 일·월 휴관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리셉션은 4월 11일(토)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진행된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작가 마리옹 펙과 더불어,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그녀의 파트너인 마크 라이던(Mark Ryden)이 함께 참석하여 자리를 빛낼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