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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난, 내 안에 몇 개의 ‘나’를 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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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난, 내 안에 몇 개의 ‘나’를 가졌을까.

시인 홍영수 기자
입력
[홍영수의 세상 보기 1]   
난, 내 안에 몇 개의 ‘나’를 가졌을까 [이미지: 류우강 기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름과 명예와 직책을 걸고 오직 나다움이라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삶이 올바르게 사는 방식이고, 세상살이가 그래야 하고 사람들 또한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이러한 삶이 진정 나다운 나의 삶일까? 또 다른 내가 되어 시인으로서, 철학자로서, 어부로서, 때론, 농사꾼으로, 수도승으로 살아가면 안 될까? 오직 자신만의 모습만을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이 어쩜 그 어떤 틀 속에 갇히는 것은 아닐까. 창조와 새로운 발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가 아닌 다양한 이름으로 사유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20세기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포르투갈 출신의 시인이지 철학자인 페르난두 페소아, 그는 내가 왜 유일하게 하나의 모습만으로 만 살아야 할까라고 하면서 자신의 실명을 예외도 무려 70여 개가 넘는 이명(異名)으로 글을 쓰면서 작가의 삶을 스스로 연출했다. 여기서 이명은 필명이 아닌 본인의 실명을 대신 사용한 다른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를 분리해 내고 그들에게 삶과 영혼을 부여하여 완전한 하나의 독립체를 형성하는 일이 그에게 있어서 글쓰기라는 것이다. 그는 창의적인 사유를 위해서 자기 안에 수많은 인물을 새롭게 만들어 가면서 자신을 파괴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를 보자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산다.

내가 생각하거나 느낄 때면,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누군지.

나는 그저 느끼거나 생각하는

하나의 장소.

(下略)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우연찮게 룸미러를 쳐다보았다. 순간, 내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내가 아니고 내가 아닌 내가 룸미러에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 외모의 변화에서 오는 느낌이 결코, 아니었기에 매우 생경한 내 모습이 낯설고 이방인처럼 느껴졌기에 황당하다 못해 깜짝 놀랐다. 여태껏 나이면서 또 다른 나를 몰랐다. 하물며 어찌 내가 너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난, 몇 개의 나를 갖고 있는 것일까?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가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를 떠 올렸다.

 

누군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거나 하나의 의미로 다가올 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고들어 따라 하고 싶어 한다. 가면을 쓴다거나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 어쩜, 우린 다중인격자로서 각각 다른 자아의 삶과 스타일을 가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살벌한 밀림과 같은 도시, 그곳에 싹트는 현대 문명의 처참한 허무 속을 헤치며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독한 영혼들, 그렇기에 너무 많은 생각들로 넘쳐난다.

​어쩜, 우리 모두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시인은 흉내 내는 자라고 했듯이. 비단 시인뿐만 아니라 일상 속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감추고 수많은 가면을 준비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시인은 흉내 내는 자.

너무도 완벽하게 흉내 내서

고통까지 흉내 내기에 이른다

정말로 느끼는 고통까지도.

 

-「아우토프시코그라피아」 중에서

 

[편집자주]
 

페르난두 페소아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는 20세기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 철학자다.  그는 18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나 1935년에 생을 마감했다.  페소아는 자신의 실명뿐만 아니라 약 75개의 이명(異名)을 사용해 글을 썼는데, 이명은 단순한 필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체성과 세계관을 가진 독립적인 인물로 설정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자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사후에 출간된 산문집 불안의 책이 있으며, 이는 그의 이명 중 하나인 베르나르두 소아르스(Bernardo Soares)의 이름으로 쓰였다.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불안,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 또한, 그는 시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를 통해 다중적인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했다. 
 

페소아는 "시인은 흉내 내는 자"라고 말하며,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자아를 창조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빌려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러한 독창적인 접근은 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많은 독자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 홍영수 세상보기 인문 칼럼을 3월 21일부터 게재합니다]   


 

홍영수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홍영수 시인, 평론가

-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 한탄강문학상 대상

 

 

 

 

시인 홍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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