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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아카데미] 윤금초의 "백악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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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아카데미] 윤금초의 "백악기 여행"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시조 아카데미 13] 옴니버스 시조

백악기 여행

 

윤금초

 

 

물새떼 날개짓에는 하늘색 묻어난다

중생대 큰고니도, 갈색 부리 익룡들도

후루룩 수면 박차고 날자 날자 날자꾸나.

 

장막 걷듯 펼쳐지는 광막한 저 백악기 공원.

부드럽고 잔잔한 빛깔로 우러나는, 산이며 강줄기에 숨결 다시 불어넣고

불현듯 출현했다 잠기는 한갖 미물도 일깨운다. 물벼룩 물장구치는 안개

자욱한 호숫가, 겹겹이 쌓아올린 색종이 뭉치 같은 시루떡 암석층 저만큼

둘러놓고 배꼽 다 드러낸 은빛 비늘 아기공룡 물끼 흥건한 늪지 둑방길 내달릴

때 웃자란 억새풀 뒤척이고 뒤척이고…. 남 먼저 단풍 올린 계수나무 솜사탕

향기 내뿜을 때 몸 낮춘 풀무치 두엇 멀리 잡목숲 응시한다. 발목 붉은 물갈퀴새,

볏 붉은 익룡 화석도 잠든 세월 걷어내고 두 활개 훨훨 치는 비상의 채비한다.

1억년 떠돌던 시간, 거기 머문 자리에서.

 

한반도 호령하던 그 공룡 어디 갔는가

지축 뒤흔드는 거대한 발걸음 소리

앞 산도 들었다 놓듯 우짖어라, 불의 울음.

 

저물면서 더 붉게 타는 저녁놀, 놀빛 바다.

우툴두툴 철갑 두른 폭군 도마뱀 왕인가. 파충류도 아닌 것이, 도롱뇽도 아닌 것이,

초식성 입맛 다시며 발 구른다 세찬 파도 밀고 온다. 검은 색조 띤 진동층 지질

아스라한 그곳, 길 없는 길을 내고 진흙 뻘밭 질주한다. 솥뚜껑 같이 넓적한 발자국,

생태사(生態史) 새긴 그 발자국에 결 고운 화산재·달무리·해조음 뒤섞이고 뒤섞여서

잠보다 긴 꿈꾸는 화석이 되는 것을, 별로 뜬 불가사리도 규화목 튼실한 줄기도 잠보다

긴 꿈꾸는 화석이 되는 것을…. 깨어나라, 깨어나라. 발목 붉은 물갈퀴새, 볏 붉은

익룡 화석도 더께 앉은 몸맨두리, 잠든 세월 걷어내고 이 강물 저 강물 다 휩쓸어 물보라

치듯 물보라 치듯, 하늘색 풀어내는 힘찬 저 날개짓!

후루룩 수면 박차고 날자 날자 날자꾸나.

백악기 여행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윤금초 시인의 '옴니버스'는 시조가 지닌 전통의 틀을 내면화 한  현대 서정의 확장성과 서사적 실험을 동반한 독특한 시학을 구현한 작품이다. 이 시도는 단순히 시조의 현대화를 넘어 시조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시조의 미래를 향한 다층적 구조로서 다채로운 사물, 정서, 시간대를 한 대중교통 수단처럼 연결하면서 시조의 옴니버스화를 시도한다. 시조 한 편 한 편이 독립적 이야기이자,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편편의 서정이 아닌 복수 서사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시조가 고정된 정형시라는 인식을 넘어 복합적 장르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윤 시인은 위와 같이 상상의 폭을 확장시켜 독자들을 백악기 시대로 끌어 들인다. 독자를 백악기 변방쯤에서 공룡, 익룡이 비상하는 꿈에 흠뻑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대와 배경을 자유롭게 수용함으로써 시조의 어휘 세계를 넓힌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파격이 아닌, 전통적 삼장 구조 안에서 리듬을 중심에 두되, 각각의 시편이 이야기성과 미니 드라마를 품고 있어 독자적 완결성과 시리즈성을 동시에 획득한다. 이는 고전 시조의 정서적 단일성에서 벗어나 현대 서정시와 소품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략이다. 이는 어조의 조화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 외형적 혁신보다는 내면의 정형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현대시조의 혁신이라 말할 수 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자작시로 찾아온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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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아카데미#윤금초시인#백악기여행#김강호시조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