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

[이승우 화가의 사람과 그림이야기 6] 화가 그는 누구인가? 5

이승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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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그는 누구인가? 5
 
장자의 추수편을 한번 살펴보자. 장자와 혜자가 호랑에서 노닐 때 장자가 말하기를 "물고기가 유유히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구나."하니 혜자가 말하기를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긱의 즐거움을 안다 하는가?"라 반문하였다.

다시 장자가 대답하기를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가?"
 
장자는 자신의 느낌으로 그 물고기가 즐거울 것이라 한 것이다. 만약 장자가 물고기가 아니라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조차 없다면,  또는 내가 네가 아니라서 너의 마음을 느낄 수 없다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엔 두터운 담벽이 둘러져 고립된 존재들이 되었을 것이다. 내 자신이 즐거울 때 웃었고, 슬플 때 운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남이 웃을 때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고. 옆 사람이나 옆에 있는 사물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물이나 사람을 자기와 같이 생각하거나 자기를 그 사람이나 사물의 옆에 놓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미루어보아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나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은 모두 자기의 경험에 의해서 밖의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새가 울다가도 때로는 노래하는 것이다. 장자가 "즐거움"이라는 글자를 가지고 물고기의 심경을 형용한 것이니 결국 자신의 즐거운 마음을 물고기에 투사한 것이다.
 
이러한 심리작용을 이정작용이라 한다. 이정작용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감정을 타 사물 위에 옮겨놓고 마치 그 사물도 나와 똑같이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치통으로 시달릴 때는 그 아름다운 설악산 단풍도 고통으로 느껴질 것이다. 음악을 예로 들어도 어떤 곡조는 쾌활하고 어떤 곡조는 슬프고 애절하다. 곡조 자체는 본래 음의 높낮이나 길고 짧음. 급하고 느림, 크고 섬세한 부분이 있을 따름이지 즐거움이나 슬픔 따위는 없다. 다시 말하면 음악의 곡조는 단지 물리적일 뿐이지 인정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정작용에 의하여 그 리듬을 우리의 인정에 투사시켜 듣는다.

여기에서 두 가지 결론을 볼 수 있다.
 
1. 사물의 형상은 인간 정취의 투사이며, 사물의 뜻이 깊고 낮음은 인간의 성품과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뜻이 깊은 사람이 보는 사물 역시 깊어지고 얕은 사람이 보는 사물은 역시 낮다.
 
2 . 미적 감각의 경험은 그 목적이 비록 성품과 감정의 깊이를 도약하는데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화가가 아무런 개념없이 술만으로 작업을 한다면은 그는 이미 화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미의 개념보다 술의 개념을 더 중요시해도 표현된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미에 대한 아무런 탐구없이 수공적인 재생산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라 공예품 업자일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은 실용적인 사람이나 과학적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화가가 존재한다. 서로 어떤 것들은 주고 받으며 사는 보편성 속에서 하는 일만은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승우 화가, 미술평론가
이승우 화가


이승우 화가는 고등학교와 여러 대학에서 강의해왔으며, 서울, 전주, 군산, 고흥, 중국 청도 등지에서 4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저서로는 『미술을 찾아서』, 『현대미술의 감상과 이해』, 『아동미술』, 『색채학』 등이 있다. 회화와 이론을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독창적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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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누구인가#이승우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