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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7] 이건청의 "반구대암각화여, 위대한 힘이시여"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7] 이건청의 "반구대암각화여, 위대한 힘이시여"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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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반구대암각화여, 위대한 힘이시여

 

이건청

 

큰 사람이시여, 위대한 힘이시여

7천 년 전쯤부터 이 골짜기에 살고 계신

님들을 지금 뵙습니다

살아 있는 님들을 뵙습니다

님들이 서 계신 7천 년 전 암벽과

우러러 저희들이 서 있는 오늘이

한 하늘에 펼쳐져 있습니다

 

상서로운 짐승 거북을 닮은

이 산등성이 돌벼랑에

돌로 돌을 갈아

암각화를 새기셨으니

7천 년 전 저 벼랑 아래로

바다까지를 불러들여 경영하신

슬기며 예지

눈부셔라 찬연도 하시어라

 

7천여 년 전, 세계 최초의 포경선도 만들어

하늘과 땅과 사람, 두루두루 안온한

너른 세상을 경영하신 분들이시여

지금 살아 있는 숨결로 오셔서

손을 덥석 잡아주십니다

피가 도는 따순 손으로

우리 손을 잡아주십니다

어서 오라고, 반갑다고

가슴으로 가슴을 품어 안아 주시는 이여

우리 몸속의 뜨거운 피는

이 골짜기에 살고 계신 님들이 주셨습니다

 

한반도 역사의 처음이

눈부신 광휘로 열린 곳

이 땅이 처음부터 복판이었다고

가슴 펴고 세계로 가는 출발지였다고

반구대암각화가 일러주고 있습니다

대곡천, 신령스런 벼랑이 깨우쳐주시며

밝은 미래로 힘차게 나아가라 일러주십니다

몇천 년의 먼 시간 되짚어 오셔서

푸지고 기름진 인간 세상 열어주소서

슬기와 예지의 길 밝혀주소서

대곡천 암각화로 우뚝 서 계신

큰 사람이시여, 위대한 힘이시여

눈부셔라, 찬연도 하시어라.

 

—『열아홉 개 섬과 암초들을 부르시는 시』(달나무, 2025)

 

  [해설

 

  바위에 고래를 그린 사람들

 

  712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 땅에서 제일 기뻐한 이는 이건청 시인이었을 것이다. 2010년에 낸 시집 『반구대암각화 앞에서』에는 반구대암각화를 보고 16편을, 천전리 각석을 보고 3편을, 고래를 생각하며 28편의 시를 써 실었다. 다섯 달 전인 38일에 낸 시집 『열아홉 개 섬과 암초들을 부르시는 시』에도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시가 여러 편 나온다. 「반구대암각화여, 위대한 힘이시여」를 보면 시인이 그 바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위원회는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단계를 담은 희소한 주제를 선사인들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며 선사시대부터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면서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문화 발전을 집약해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반구대암각화는 울산 시내를 거쳐 동해로 흐르는 태화강의 한 지류인 대곡천의 중간쯤에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234-1번지로 지번이 나와 있는 반구대의 296점 암각화는 수렵과 어로 장면과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들에 대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한 시기에 그려진 것이 아니고 수십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절벽에 매달려 돌이나 청동기로 암각화를 새겼다.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모두파기윤곽선파기혹은 굵은 선 하나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세 가지 기법을 주로 사용해 그렸는데 그들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주술적 의미가 가장 컸겠지만 고래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고래가 생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을 뿜는 고래, 새끼 밴 고래, 작살에 꽂힌 고래, 잡아서 뒤집어놓은 고래, 사람들이 분배 중인 고래……. 시인도 말했지만 반구대에는 돌고래, 향고래, 솔피, 상괭이, 큰고래, 혹등고래, 수염고래 등 다양한 고래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린 호우가 반구대암각화에 치명타를 입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달 침수 이후 물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는데 폭염 속에 녹조현상이 일어나 물은 탁한 녹빛으로 변했고, 역하고 매캐한 비린내가 진동한단다. 암각화는 냄새 풍기는 반구천 물속에 수몰 뒤 보름 지난 지금도 상부 끝단 일부 외엔 잠겨있다. 하류의 식수, 산업용수 조달용 사연댐(1965년 건립)은 수문 없는 자연월류식 제방이다. 그래서 작은 관로의 물빼기로 하루 30cm씩 수위를 낮추는 것 말고는 어떤 대책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댐 수위가 침수 이전인 52m까지 낮아지려면 한 달도 더 걸려 암각화는 두 달 가까이 녹조에 묻혀 있어야 한다.

 

  이건청 시인이 그렇게 상찬해 마지않은 반구대암각화를 잘 복구하고 복원하는 일에 정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슬기와 예지의 힘이 지금 필요하다. “대곡천 암각화로 우뚝 서 계신/ 큰 사람이시여, 위대한 힘이시여/ 눈부셔라, 찬연도 하시어라.”라고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가 대통령과 여러 장관의 귀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럼 두 달 동안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 

  [이건청 시인]

 

  1942년 경기도 이천군 모가면 신갈리에서 태어나, 1966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1967<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목선들의 뱃머리가」 입상하였고, 196811월 《현대문학》에 박목월 시인에 의해 「손금」이 추천되었고 이후 「구시가의 밤」, 「구약」 등이 추천되었다. 1978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고 1986년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부터 한양대학교 문과대 전임강사로 부임, 2002년엔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학장을 역임하다 2007년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시집 『이건청 시집』『목마른 자는 잠들고』『망초꽃 하나』『하이에나』『코뿔소를 찾아서』『석탄 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반구대암각화 앞에서』『굴참나무 숲에서』『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기획시집 『로댕-청동시대를 찾아서』 등이 있다. 시선집 『해지는 날의 짐승에게』『움직이는 산』『무당벌레가 되고 싶은 시인』『이건청 문학선집』(4)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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