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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48] 이승하의 "그대, 얼음 위를 맨발로"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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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얼음 위를 맨발로

 

이승하​

 

그대, 얼음 위를 맨발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솟는 불길에 살점이 타는 아픔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눈물 흘리며 밥을 먹은 적이

 

서 있기도, 앉아 있기도 어려운 날

그대 끝내 드러눕지 않아 세상이 꼿꼿이 앉는다

그대 눈빛 설움에 젖어 세상의 어두운 곳이 밝아진다

허기진 언어 그대 정신의 분화구에서 견디고 견디다

피맺힌 언어 그대 정신의 막장에서 견디고 견디다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거들랑,

 

하늘에

뿜어 올려라

하늘을 우러러

토해버려라

하늘에

 

별이 될 것이다 길 잃은 나를 인도할

별자리가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오래 고통받은 이들

오래 괴로워한 이들은

오래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것이다, 힘을

온몸이 뒤틀려 숨도 쉬기 어려울 때

별이 떨고 있는 창 밖을 보라 조물주의 혓바늘이 돋아 있다

 

그대, 얼음 위를 알몸으로

기어간 적이 있는가?

온 내장이 그냥 터져나가는 아픔으로

비명을 지른 적이

지르다 지쳐 까무러친 적이

 

이 땅의 너무 많은 구속당한 아들 딸아.

 

ㅡ『욥의 슬픔을 아시나요』(걷는사람, 2025) 

광주학생항일운동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오늘은 법정기념일입니다.

 

  오늘 11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나무위키를 보니 192911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독립운동에 대해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910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호남선 통학열차 안에서 일어난 광주고보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의 충돌이 본격적인 항일운동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주중 4학년 학생 후쿠다 슈조(福田修三), 스메요시 가쓰오(末吉克己), 다나카(田中) 등이 광주여자고보 3학년 박기옥과 이광춘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했고 이를 목격한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가 달려와 항의했는데 후쿠다가 뭐냐, 조선인 주제에라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한 박준채가 주먹을 날리면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패싸움으로 확산되자 나주 역전파출소에서 일본인 경찰 모리다가 파견되었지만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편들고 조선인 학생들에게 따귀를 때리는 등 구타했습니다. 하교 열차에서도 박준채가 모리다에게 사과를 요구했다가 이번에는 본인이 뺨을 맞습니다. 그 정도에서 마무리되었지만 소문은 광주 전역으로 펴졌겠지요.

 

  113일은 음력 103일로 개천절이면서 일본 메이지 덴노의 생일을 기념하는 명치절이 겹치는 일요일이었습니다. 일본은 학생들에게 등교할 것과 신사참배를 요구했습니다. 광주신사에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광주중 일본인 학생 14명을 만난 광주고보 한국인 학생 8명과의 패싸움이 벌어지는데 일본 학생들이 한국 학생 최상현을 단도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광주고보 학생들이 몰려가 광주중 학생들을 충장로에서 팼고 얻어맞은 광주중 학생들은 광주역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산발적인 싸움이 아닌 학교 간의 전면적인 패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광주중 학생 수백 명이 학교 유도교사의 인솔하에 야구방망이나 죽창을 들고 광주역으로 가 하교하려는 한국인 학생들을 공격했습니다. 광주고보 학생들도 가만있지 않고 몽둥이 등을 들고 곧바로 달려갔고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의 싸움으로 광주 시내는 난리가 났습니다. 양교 교사들과 경찰, 소방관까지 동원되었지만 경찰은 일본인 학생들 편만 들고 소방관들은 한국인 학생들에게 물을 뿌리는 등 편파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싸움은 일단 끝났으나 학교로 돌아온 광주고보 학생들은 항일투쟁을 할 것을 논의했고 시내 각 학교 학생들도 투쟁에 동참할 뜻을 밝혔습니다. 광주고보와 광주농업고등학교, 전남공립사범학교 학생들은 괭이자루, 장작개비, 목검 등으로 무장하고 오후 2시부터 노래를 부르며 시내로 진출했습니다. 시위대는 조선독립만세’,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일제 타도등의 구호를 외치고 애국가와 응원가를 부르며 광주중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이 소방대, 재향군인을 동원해 광주중학교로 가는 동문다리를 틀어막자 시위대는 충장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전남도청에 이르자 전남공립사범학교 학생 100여 명을 비롯해 광주여자고보와 수피아여자고등학교 학생들, 학생이 아닌 광주 시민까지 시위대에 합류했습니다. 3만여 명에 이른 시위대는 도립병원(현 전남대학교병원 위치) 광장에까지 진출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방향을 돌려 광주천변을 행진하다 해산했습니다. 일본 경찰은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한국 학생 75명을 체포했지만 일본 학생들은 10명 정도만 잡아가는 시늉을 했습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은 이 일이 전국으로 번지지 않도록 학생운동을 철저히 탄압하라고 각지의 학교장들에게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129일부터 서울 지역 학교들의 항일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시위 학생 120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후 1213일까지 서울 지역에서만 학생 12천여 명이 시위, 동맹휴학에 참여했고 그중 1,400여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서울 지역에서만 45명이 구속되었고 이 가운데 35명이 최종적으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303월까지 전국 320여 개교에서 학생 54천여 명이 참여해 1,462명이 퇴학당했고 3천여 명이 퇴학 혹은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시는 1929년의 사건을 직접 다루진 않았지만 광주학생독립운동 때도, 419혁명 때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도 왜 이렇게 학생들이 수난을 겪나 하는 생각에서 써본 시입니다. 제 등단작이 「화가 뭉크와 함께」라는 시인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서울대생 박종철은 사망에까지 이르렀지만 80년대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고통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중앙대학교 도서관에 올라가는 계단 왼편에는 419혁명기념탑인 의혈탑이 있습니다. 이 탑에는 그때 숨진 6명 학생 전무영ㆍ지영헌ㆍ송규석ㆍ서현무ㆍ김태년ㆍ고병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날, 조국의 광복과 민주화를 위해 구타당하고, 구속되고, 불귀의 객이 된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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