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86] 허승희의 "어느 영화배우의 죽음"
어느 영화배우의 죽음*
허승희
유리컵 깨지는 소리
난자하게 흩어진 유리 파편들
자동차 앞 유리처럼 조용히 내려앉을 순 없었을까
무덤에 갇히고서야 날개를 접는 추문들
소문과 녹취록은 무수히 새끼를 치고
쓸어내면 새 얼룩이 자막으로 뜬다
아홉 살 아이가 입기엔 너무나 헐렁한
검은 상복이 슬프다
영안실에선 곰팡이 핀 루머들이 헐값에 번식한다
아빠는 배우였다
영정 속 아빠 대사는 죽음
입천장을 찌르던 파편들이 마이크 잡음으로 남았다
영정을 움켜쥔 아이의 언 손가락
한 걸음씩 가슴 속에서 아빠를 태운다
하얀 재라도 긁어내어 주고 싶어
TV 속으로 내 손을 집어넣는다
*고인이 된 영화배우 이선균 씨의 장례식을 보며.
—『새는 언제 날개를 접는가』(시와소금, 2025)

[해설]
연예인의 자살이 안타깝다
시인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배우 이선균이 자살한 원인을 “유리컵 깨지는 소리”와 “난자하게 흩어진 유리 파편들”이라고 표현했다. 이선균 씨는 마약 투약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었는데 여러 차례의 경찰 조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과도한 비판과 루머에 계속 시달려야 했고, 특히 인터넷 댓글들이 무자비하게 그를 사냥하였다. 그러자 광고주들이 광고에서 그를 빼면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고 소송을 준비하자 그 압박감이 그만 그를 극단적인 행위로 몰아갔다.
김새론 씨의 자살과 송영규 씨의 자살도 주된 이유는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단죄하고 처형하는 댓글을 써서 혹독하게 문초하니까 그에 따른 고통을 못 이겨 자살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고, 죄책감과 책임감도 가미되었겠지만 엄청난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 자살을 시도했고, 그 자살이 성공하여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최진실, 이은주, 종현, 유니, 박용하, 정다빈, 구하라…….
허승희 시인은 이선균 씨의 자살을 변호해주려고 이 시를 쓴 것이 아니다. 익명으로 자행된 수많은 루머나 악플도 나빴지만 왜 아홉 살 아이를 두고 갔냐고 이선균 씨를 꾸짖고 있다. (그 당시 두 아이의 나이는 만 14세, 12세였다.) 발인 날 고인의 큰아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섰으며, 부인 전혜진 씨는 차남의 손을 잡은 채 영정과 관이 운구 차량에 실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스스로 목숨을 거둔 아빠의 장례식 장면을 두 자식이 보게 하다니! 카메라 플래시가 관 위에서 마구 터지는 것을 아내가 지켜보게 하다니!
시인은 그래도 안타까워서 “하얀 재라도 긁어내어 주고 싶어/ TV 속으로 내 손을 집어넣는다”라고 마지막 연을 썼다. 시신은 수원시 연화장에서 화장되어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삼성엘리시움에 유골이 봉안되었다. 그가 나온 영화나 TV 드라마 중 좋은 작품이 정말 많았다. 좋은 배우가 그런 일로, 그런 식으로 생을 마감했으니 땅을 칠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허승희 시인]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부산대학교 교육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수필집 『스쳐 가는 바람처럼』을 펴냈으며, 2022년 《시와 소금》 신인상을 받고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으로 『고등어 눈』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