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65세,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우리 사회에서 65세라는 숫자는 유난히 특별하다. 기초연금의 수급 연령이 65세이고, 노인복지정책과 노인 일자리 정책에서도 65세가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65세가 된다고 해서 법적으로 모든 사람의 경제활동이나 사회적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65세가 되면 무엇을 그만두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65세 이후 무엇을 새롭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4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한다. 고령인구 비중은 앞으로도 증가해 2036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인구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일하고, 소비하고, 세금을 내고, 복지제도를 설계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현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65세 이후의 삶이 결코 짧지 않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의 2025년 고령자 통계를 보면 2023년 기준 65세의 기대여명은 21.5년이다. 남자는 19.2년, 여자는 23.6년이다. 평균적으로 65세 이후에도 20년 안팎의 삶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생애공식에 머물러 있다. 학교에 다니고, 취업하고, 열심히 일하고, 정년퇴직하고, 노후를 보내는 방식이다. 문제는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는데 사회적 역할의 시간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60세가 되면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65세부터 사회적 역할이 끝난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정년제도와 복지정책에서 사용하는 연령 기준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제도적 기준이다.
바로 이 간극을 이제는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65세 이후에도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통계는 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통계청의 2024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가운데 장래에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69.4%였다. 희망하는 근로 연령은 평균 73.3세였다.
이 숫자를 단순히 노인들이 돈이 필요해서 일을 원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물론 경제적 이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일은 소득만이 아니다. 일은 사람과 만나는 방식이고,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방식이며,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다. 오랫동안 일해온 사람에게 직업은 단순한 급여명세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고령자의 노동을 낭만적으로 포장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고령층의 경제적 현실은 여전히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였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연금 수급률은 90.9%였지만 월평균 수급액은 69만5천 원이었다. 따라서 노인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결론은 잘못된 결론이다.
정확한 답은 이것이다. 일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며,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는 인간다운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은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며, 복지는 노동의 대체물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어야 한다.
문제는 노인 일자리가 아니라 어떤 일자리인가’이다. 현재 노인 일자리 정책도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다. 2024년 11월 시행된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기본적인 지원 대상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규정하면서도 취업지원, 현장실습, 노인친화기업 지원, 노인역량활용사업 등 일부 사업은 60세 이상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방향이다. 노인을 단순히 보호받는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참여하며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보는 방향이 제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성과를 단순히 “몇 개를 만들었는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 일자리가 그 사람의 경험과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 30년 동안 제조업 현장에서 일한 사람에게 단순 반복 업무만 맡기는 것과 후배 기술자 교육, 품질관리, 안전관리, 현장 자문을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르다. 교직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역 교육이나 문해교육, 청소년 멘토링에 참여할 수 있다.
기업 경영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청년 창업가의 멘토가 될 수 있다. 농업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귀농·귀촌 교육과 지역 농업기술 전수에 참여할 수 있다.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써온 사람이라면 도서관과 문화공간에서 강의하고 지역의 기억을 기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AI 시대에는 경험의 가치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고령자의 경험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AI는 정보를 빠르게 검색하고, 요약하고, 계산하고, 문서를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하지만 AI가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읽는 능력, 조직의 역사와 실패에서 얻은 감각,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는 능력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령 40년 동안 한 산업에 종사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 가운데 상당 부분은 문서화되어 있지 않다. 이 거래처는 계약서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이 공정에서는 매뉴얼대로 하면 오히려 사고가 난다. 이 장비는 이런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고장 신호다. 고객은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런 지식은 흔히 ‘암묵지’라고 부른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암묵지가 자동으로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AI의 계산 능력과 인간의 경험 능력을 결합하는 구조가 중요해질 수 있다. 젊은 세대가 AI를 통해 속도를 높인다면, 고령 세대는 경험을 통해 방향을 잡아줄 수 있다. 속도와 경험의 결합이다. 이것은 청년과 노인을 경쟁시키는 방식과 전혀 다른 접근이다. 그래서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첫째, 정년 이후 계속고용 제도를 체계화해야 한다. 정년 60세와 실제 노동시장 은퇴연령 사이의 간극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년을 일률적으로 한꺼번에 올리는 방식만이 답은 아니다. 기업 규모와 업종, 직무 특성을 고려해 정년 후 재고용, 직무전환, 시간제 근무, 프로젝트형 계약, 전문직 자문 등의 다양한 계속고용 모델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일괄 퇴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무 수행 능력과 건강 상태, 경험을 기준으로 고용 방식을 유연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둘째, 중장년 재교육을 50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65세가 된 뒤 갑자기 새로운 일을 찾게 해서는 늦다. 50대부터 자신의 경력을 분석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며 제2의 직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국가와 기업이 지원해야 한다. 특히 AI 활용 능력, 디지털 문해력, 데이터 활용, 돌봄, 안전관리, 상담, 교육, 지역서비스 등 고령자의 경험과 결합할 수 있는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셋째, ‘경험은행’을 만들 필요가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인의 동의를 전제로 경력·자격·기술·교육·현장 경험을 체계적으로 등록하고, 기업과 학교, 공공기관, 지역사회가 필요한 경험을 찾아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0년간 자동차 품질관리 경험자, 40년간 농업기술 경험자, 20년간 회계 실무 경험자를 단순히 65세 이상 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지 않는 것이다. 나이를 데이터의 첫 항목으로 놓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첫 번째 자산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넷째, 세대 간 멘토링을 국가 정책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청년에게는 고령자의 경험을 배우게 하고, 고령자에게는 청년의 디지털 감각과 최신 기술을 배우게 하는 쌍방향 멘토링이 필요하다. 이른바 역멘토링이다. 고령자는 산업과 조직의 경험을 전하고, 청년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전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가르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구조다.
다섯째, 고령자 친화적인 노동시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근력과 반응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시간과 작업환경을 조정하면 된다. 주 40시간 노동만이 정상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주 15시간, 20시간, 프로젝트형, 계절형, 자문형 등 다양한 노동형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에게 필요한 것은 “젊을 때와 똑같이 일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건강에 맞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이다.
여섯째, 노인 빈곤 정책과 고용정책을 분리하면서도 연결해야 한다. 가난한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연금, 기초연금, 주거, 의료, 돌봄, 일자리 정책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일할 수 없는 고령자에게 일자리를 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책임 전가다.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소득보장과 돌봄이 먼저다.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65세에도 역할이 있다는 말이 65세에도 반드시 일해야 한다는 말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사람에게는 일할 권리뿐만 아니라 쉴 권리도 있다. 평생 가족을 돌보고 직장에서 일하며 사회에 기여한 사람이 65세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선택한다면 그것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사람의 존엄을 생산성으로 측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일한다. 어떤 사람은 손주를 돌본다. 어떤 사람은 지역사회에서 봉사한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어떤 사람은 평생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모두 존중받아야 할 삶이다.
고령사회 정책의 목표는 노인을 생산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고령사회 정책의 최종 목표는 노인을 다시 생산자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선택권을 돌려주는 데 있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할 권리.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배울 권리. 사회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에게 참여할 권리.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받을 권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사람에게 쉴 권리. 이 네 가지와 하나의 권리, 즉 존엄하게 늙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고령사회 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고령화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20대도 언젠가 60대가 되고, 오늘의 40대도 언젠가 70대가 된다. 따라서 우리가 만드는 고령사회는 남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미래다. 노인을 부양하는 사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세대가 서로의 자산을 연결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에게는 기술과 도전의 기회를 주고, 중년에게는 경력 전환과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고령자에게는 축적된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역할과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65세라는 숫자는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두 번째 직업의 출발점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공부의 시작이며, 누군가에게는 평생 쌓은 경험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무 없이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느냐이다. 사람을 나이로 먼저 판단하는 사회에서 사람의 경험과 능력을 먼저 보는 사회로 가야 한다. 노인을 복지의 대상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순간, 그 사람의 직업과 전문성, 실패와 성공, 삶의 기억까지 함께 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65세가 되었다고 40년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70세가 되었다고 인간의 존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초고령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반대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축적된 경험이 사장되지 않도록 사회와 연결하는 것. 그것이 고령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이다.
결국 질문은 “65세까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다. 65세 이후에도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몇 살까지 역할을 허락할 것인가. 사람에게 역할의 유효기간은 없다. 65세라고 역할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70세라고 존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고령사회가 지켜야 할 마지막 기준은 생산성이 아니다. 사람이 끝까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초고령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이 이제 시작해야 할 진짜 개혁이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