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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43】 최양숙의 "이면"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이면

 

최양숙

 

고개를 반쯤 돌린 그는 아스라하다

겹겹의 표정으로 자신을 감춘 피카소처럼

눈 아래 또 눈이 있어

어긋나는 윤곽들

 

목에서 등을 따라 그려진 꽃잎들은

혼자 듣고 혼자 말하며 기억을 분해한다

얼룩이 흘러내린다

녹이 슨 이슬같다

 

담뱃재 털던 손끝 가늘게 떨고 있다

뭉그러진 입술 위로 햇살이 조각난다

침묵에 길들어가는

당신이라는 독극물

 

《시조시학》 (2025. 가을호)

 

이면 / 최양숙이미지: 강영임기자
이면 / 최양숙[이미지: 강영임기자]

어떤 폭력은 떨어지는 나뭇잎보다도 조용하다. 문 닫히는 소리로 시작하거나, 식탁 위 그릇의 방향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눈빛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폭력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주어진다. 어떤 날은 부드럽고, 어떤 날은 말 없는 침묵으로 스며든다. 그 다층적인 얼굴들은 피카소의 큐비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의 시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분해되고 뒤틀리게 그려진, 형상들의 조각들처럼.

 

첫째 수 눈 아래 또 눈이 있어 / 어긋나는 윤곽들이것은 단지 회화적인 비유가 아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왕따, 언어, 직장, 학교, 데이트, 가정폭력을 당한 이들은, 한 번의 고통이 아니라 수많은 균열로 이어진다. 그래서 피해자의 내면에는 분노와 사랑, 공포와 체념, 속박과 애착 등 서로 모순된 감정들이 얼굴위에 내려앉는다. 그 모순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자아를 찢어 놓는다.

 

둘째 수는 폭력에 노출된 이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목에서 등을 따라 그려진 꽃잎들은 / 혼자 듣고 혼자 말하며 기억을 분해한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을 겪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잊혀 진 것이 아니라 분해된 것이다. 사랑의 언어와 모욕의 언어, 다정함과 통제의 잔해가 뒤엉켜 심리의 균열이 발생되어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된다.

 

셋째 수 침묵에 길들어가는 / 당신이라는 독극물폭발적이지 않지만 치명적이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스며들어 자아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기억을 흐리며 윤곽을 무너뜨린다. 바로 그 침묵의 특성 때문에 폭력에 노출된 이들의 자아는 큐비즘과 연결된다.

 

피카소의 작품들이 여러 시점에서 여러 조각으로 그려져 우리에게 보여줬다면, 「이면」은 폭력의 심리적 작용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윤곽은 흐트러지고 기억은 분해되며, 햇살은 조각난다. 이 모든 파편들의 합은 폭력이다. 단일한 형태로 정의 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의 구조와 내면의 형태를 거울 보듯이 언어로 그리고, 사유하게 만든다.

 

양면성은 상반된 두 속성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성질인 반면, 이면은 겉과 속이 다르며 숨겨진 진실, 보이지 않는 층위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면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을 잘 살펴봐야 한다. 꾸며진 언어와 태도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그 이면에는 아픔들만이 자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안다.

조각난 얼굴을 되돌리는 첫걸음은, ‘폭력의 흔적을 알아보는 것이란 걸.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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