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32] 박순의 "치매"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치매

 

박순

 

오늘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버지는

머리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른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구둣발로 매일 머리를 밟혔다고 한다

지금도 달고 사는 두통약

계속 두 손을 머리에 얹고

둥글게 등을 구부리며 새우처럼 잠을 청하지만

다리를 움쩍거린다

먹을 것을 사다 드리면 자꾸 먹을 것을 숨긴다

고아원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견뎠기 때문

어쩌면 어린 시절을 빨리 지우고 싶어

치매가 찾아왔는지 모른다

다시 고아원에 갇힌 아버지,

여덟 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면서 자꾸 울고 있다

아버지의 여덟 살을 벗어나게 하려

작은 몸을 흔들어 깨운다

 

―『페이드 인』(오감도, 2020) 

치매 _ 박순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아버지의 아픔을 아는 딸

 

  시도 얼마든지 허구일 수 있다. 소설은 허구이고 시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만들어내 쓸 수 있다.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보면 암담한 가족사가 전개되는데 100% 허구임을 뒤늦게 알고서 한동안 배신감을 느꼈지만 시적 진실은 사실이냐 아니냐가 결정하지 않는다. 이성복 시인은 훌륭한 시인이다. 박순 시인의 이 시를 읽으니 한 아버지의 고단한 일생이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판다. 시의 내용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진다.

 

  고아원(요즘엔 保育院이라고 한다)에는 흔히 말하는 형들이 예전 군대의 고참처럼 굴었다. 질서를 잡는답시고 어린 동생들을 괴롭혔다. 화자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구둣발로 매일 머리를 밟혔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달고 사는 두통약/ 계속 두 손을 머리에 얹고/ 둥글게 등을 구부리며 새우처럼 잠을 청하지만/ 다리를 움쩍거린다고 한다. 그 아버지에게 치매가 온다. 먹을 것을 사다 드리면 자꾸 숨기는 이유는 고아원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견뎠기 때문이다.

 

  여덟 살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다시 여덟 살이 되고 말았다. 끔찍한 상처를 안고 살아왔기에 치매기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당시 10만 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하였고 5천 명이 해외로 입양되었다. 그 뒤로도 우리나라는 20세기 내내 해외로 입양아를 꾸준히 보내는 나라였다. 이 시에는 아버지가 왜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는지 이유가 나와 있지 않은데, 부모의 손길이 안 닿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큰 불행이었다. 그 아버지의 한이 치매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여덟 살을 벗어나지 못하고서 자면서 자꾸 우는 아버지. “아버지의 여덟 살을 벗어나게 하려/ 작은 몸을 흔들어 깨우는딸의 착한 마음이 감동을 준다. 이 세상에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참 많은 것이다. 그것을 압축하여 표현하는 이가 시인이다.

 

  [박순 시인]

 

  2015년 계간 《시인정신》으로 등단.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작문교실 강사.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표창장, 서울시민문학상 본상 수상. 시집 『페이드 인』『바람의 사원』 출간. 문학청춘 기획위원, 한국여성문예원 편집위원, 단테문인협회 이사.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박순시인#치매에관한시#이승하의시해설#하루에시한편을#코리아아트뉴스시해설#이승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