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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남진영 작가의 "음치 할머니와 진흙탕 손녀, 그리고 100년"

작가 이청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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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영 작가, 대한문학세계 수필 부문 지난 5월 등단 대한문인협회 서울지회 정회원 남진영 작가의 수필 세계
[KAN]남진영 작가의 "음치 할머니와 진흙탕 손녀, 그리고 100년" [사진 : 이청강 기자]

[문학=코리아아트뉴스 이청강 기자] 남진영 수필 작가를 소개한다. 남진영 작가는 대한문학세계 수필 부문 "낮은 곳에서 시작한 문장" 작품으로 지난 5월 등단했다. 

 

오늘 소개할 수필 작품은 "음치 할머니와 진흙탕 손녀" 작품으로  할머니와 손녀 간 친밀함이 묻어있다. 작품을 소개합니다.


음치 할머니와 진흙탕 손녀, 그리고 100년 / 남진영

 

비가 오면 그런 생각을 한다. 우산 없이 달려나가서 흠뻑 젖어버리고 싶다는. 어른이 된 지 꽤 됐는데 아직도 이렇다. 할머니 집을 기억한다.

 

여름방학마다 내려가면 거기엔 과수원이 있었고, 개울이 있었고, 돼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돼지를 키우셨다. 원래는 소였는데, 전염병으로 한 번에 다 잃으시고 돼지로 갈아타셨다고 했다.

 

그리고 새벽마다 음치 할머니의 찬송가가 있었다. 할머니 목소리는 뭐랄까... 하늘을 찌를 듯한 성량과 하늘이 받아주지 않는 음정이 공존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이불 속에 숨어 배를 잡고 웃었다. 들키면 끝장이었기에. 당연히 들켰다.

 

"성경에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하나님도 함께하신다고 했다." 이 구절은 할머니의 영구 소환 주문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이른 새벽이었다.할머니의 기도는 방대했다. 7남매, 그 배우자들, 손주들 이름 하나하나, 그리고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어제 저녁 뉴스 앞 코멘트까지. 다리에 쥐가 났다. 우주적 기도는 계속되었고, 나는 꾸벅꾸벅 졸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할아버지가 콧등을 툭툭 치셨다. 잘생기고 훤칠한, 요즘 말로 하면 클래식한 미남. 젊을 때 동네 여심을 흔들었다는 소문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찬송가를 버텨낸 게 진짜 사랑이라고. 나도 그 찬송가를 버텼으니 우리는 진짜 같은 편이었다.

 

어느 비 개인 아침에 집에 혼자 남겨졌다. 겁 많은 아이였던 나는 적막이 무서워서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안개가 자욱했다. 진흙길은 폭신했고, 걸음마다 차갑고 부드러운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싫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풀려나는 것 같았다. 맨발로 땅을 밟았다. 비가 오면 우산 없이 풀밭을 달렸다. 개울에서 온몸이 젖은 채로 물고기를 잡았고, 맨땅에 누워 흐르는 구름을 보다가 잠들었다.

 

흙 묻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지만 단 한번도 탈이 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 몸이 태초의 흙에서 왔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안개 속을 걷다가, 낡은 전봇대에 참새 떼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오직 참새 소리만 그 정적을 채웠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 우주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숨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문득, 선명한 생각이 왔다. 이 길은, 100년 전에도 이랬겠구나.

 

나는 21세기 도시에 산다. 어제의 풍경이 오늘 사라지는 곳. 사람들이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늘 무언가에 쫓기는 곳이다. 새로운 기술이 매일 쏟아지고, 계속 배우지 않으면 뒤처진 것 같은 불안으로 살아 간다.

 

고개를 돌린다. 창밖에 비가 내리면, 나는 그 안갯길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100년 전 누군가도 그 안개 속을 걸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어쩌면 내가 그리워했던 건 할머니 집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 시절의 나, 혹은 그 시절의 나보다 훨씬 오래된 인간이 원래 알고 있던 것. 

 

비  온 뒤 흙냄새, 맨발로 진흙을 밟는 기분, 새벽 이불 속에서 참는 웃음 같은 것들. 시대를 넘어 선 것을 그리워 하는 것은 아닐까.

 

비 오는 아침. 우산을 두고 나갈까 생각한다.

 

▲ 대한문인협회 서울지회 정회원 남진영 작가의 수필 세계 [사진 : 이청강 기자]

 

프로필

남진영 작가

서울 거주

대한문학세계 수필 부문 등단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서울지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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