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작가 마르코 루피, 서울 첫 개인전…하랑갤러리서 《Unconscious Echoes》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마르코 루피(Marco Lupi, b.1958)가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하랑갤러리는 9월 9일부터 20일까지 마르코 루피의 개인전 《Unconscious Echoes : 무의식의 메아리》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인간 내면의 감각과 기억, 그리고 의식 아래 자리한 무의식의 영역을 회화적 언어로 풀어낸다. 마르코 루피는 정해진 형식이나 논리적 구성을 따르기보다 직관과 본능에 따라 색과 형태, 물질을 쌓아 올리며 자신만의 화면을 만들어왔다.
전시 제목 ‘Unconscious Echoes’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험을 넘어, 내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감정과 감각이 예기치 않은 순간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작가에게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과 감정을 표면 위로 불러내는 장치이자, 관람객의 잠재된 경험을 자극하는 매개체다.
마르코 루피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제작 방식이다. 회화와 콜라주를 비롯해 패브릭과 모래, 종이 등 서로 다른 물질을 자유롭게 결합하고, 때로는 거칠고 즉흥적으로 재료를 덧붙이거나 지우는 과정을 통해 화면을 완성한다.
화면을 채우는 인물과 동물, 집과 나무, 눈과 얼굴 같은 형상들은 서로 독립된 장면처럼 보이면서도 하나의 큰 기억의 구조 안에서 연결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눈과 얼굴은 타인의 시선 혹은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감각을 환기하고, 단순화된 집과 동물, 인물 형상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꿈속 이미지처럼 화면 곳곳에서 출현한다.
이번 출품작에서 색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렬한 빨강과 파랑, 노랑, 검정과 흰색이 충돌하거나 겹치면서 화면에 즉흥적인 리듬을 만든다. 거친 질감과 덧칠의 흔적, 불완전하게 남겨진 선과 면은 작가의 작업 과정 자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완결된 서사보다 감각의 흐름에 가까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성과 유희적 시도는 작품에 특유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중첩된 색채와 질감은 격렬하면서도 따뜻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작품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 열린 공간을 형성한다. 물질의 흔적과 색의 파동은 작가가 살아오며 경험한 순간과 기억, 잊힌 얼굴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잔상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 기억은 선명한 이야기의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흩어졌다가 다시 떠오르는 흔적에 가깝다.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진 장면이 특정한 색이나 질감, 감각을 통해 다시 되살아나는 인간의 기억 구조와 닮아 있다.
마르코 루피는 이러한 내면의 움직임을 ‘메아리(Echo)’에 비유한다. 의식적으로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이성 아래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의식이 존재하며, 작가는 그 영역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진동을 회화로 포착한다.
관람객에게도 정해진 해석은 요구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을 무리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일어나는 감정을 온전히 마주할 때 비로소 작품과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Unconscious Echoes》는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해독하기보다 색채와 질감, 물질이 만들어내는 감각에 집중하는 전시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떠올리는 기억과 감정에 주목하는 순간, 작가의 무의식과 관람객의 내면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형성된다.
특히 〈I Suoi Disegni, I Miei Ricordi〉, 〈Con I Miei Due Cari Amici〉, 〈Chissa Perche Il Viola〉 등은 인물과 동물, 건물, 눈, 나무 등의 이미지가 콜라주처럼 병치되며 마르코 루피 특유의 기억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I Suoi Disegni, I Miei Ricordi〉는 우리말로 ‘그의 그림들, 나의 기억들’을 뜻하며, 혼합재료를 사용한 50×40cm 작품으로 2024년에 제작됐다.

〈Con I Miei Due Cari Amici〉는 ‘소중한 두 친구와 함께’라는 제목으로 40×30cm 크기의 2024년 작품이다.

〈Chissa Perche Il Viola〉는 ‘왜 보라색일까’라는 제목의 40×40cm 작품으로 2021년에 제작됐다.
하랑갤러리 관계자는 “마르코 루피의 작품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관람객 각자의 감각과 기억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닌다”며 “이번 전시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감정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 개요
- 전시명: 《Unconscious Echoes : 무의식의 메아리》
- 작가: Marco Lupi
- 기간: 2026년 9월 9일~20일
- 관람시간: 오전 11시~오후 5시
- 장소: 하랑갤러리
-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38길 45, 1층
- 휴관: 월요일·화요일
- 관람료: 무료
- 문의: 02-365-95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