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85] 이숙현의 "모가슴니다"
모가슴니다
이숙현
귀화면접시험, 쉰 즈음의 베트남 여인
“일 많이 해, 연골 없어”
반말이 일상어쯤 된 어설픈 발음 조각이
겨드랑이에 낀 목발의 또각 소리보다 먼저 들어온다
이제 3년 된 두 번째 남편, 열세 살 아이
잘못된 띄어쓰기로 이어 붙인 그녀의 이력에
현기증으로 노래진 한글이 이미 점자로 변한다
꿈에서도 모를 질문엔
“모가슴니다”가 답이어서
유일하게 맞춘, 쑥빛 송편 같은 얼굴이 되어 나간다
미군 따라 떠난
까막눈 언니도 그랬다며
우리의 옛날도 등 뒤로 썰물처럼 빠진다
여긴 살기 좋다는 한국의 봄
가지치기로 잘린 말의 가지 끝에
늦순조차 없을 그녀에겐
늘 시린 겨울
글은 몰라도 마음은 알 것 같은 그녀에게
조팝꽃 송이처럼 한국어야 피어라—, 속삭여 본다
—『푸레독 여자』(현대시학사, 2025)

[해설]
귀화를 원하는 베트남 여성
이 시 외에 「어느 귀화면접관의 일기」 같은 작품도 있으므로 이숙현 시인 자신이 귀화면접관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귀화면접관 앞에 선 50대 베트남 여인은 한국어를 영 할 줄 모른다. 뭐라도 질문하면 “모가슴니다”가 대답이다. “모르겠습니다”를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다. “일 많이 해, 연골 없어” 어떻게 이 말은 외운 것일까. 한국인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열세 살 아이가 있고 재혼한 지는 3년이 된 여성이다.
한국에 와서 몇 년 사는 동안 노동현장에서 일만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어를 전혀 배우지 못했는데 한국인으로 귀화를 하겠다니 귀화면접관은 참 난감하다. 그녀의 언니가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으로 가려 했을 때, 영어를 못하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일까? 이 자매의 사연이 가슴 아프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이어 한국의 참전이 이 자매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라이따이한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그 아이들은 베트남에서 차별받지 않고 잘 자랐을까? 김명인의 「동두천」 연작시에 잘 나와 있듯이 한국에서 태어난 미군 혼혈아들은 한국 사회에 적응을 잘하지 못해 대부분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 ‘튀기’라는 놀림과 함께 왕따를 당했던 것이다. 인순이, 윤수일, 박일준 같은 가수는 아주 성공한 케이스다. 미국은 세계의 인종 시장 같은 곳이니 미국으로 간 미군 혼혈아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을 잘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 베트남 여성도 한국인 남편과 같이 살면서 말도 열심히 배우고 직업도 갖고 아이도 잘 키우고, 귀화도 허락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과 베트남, 한때는 정글에서 총을 겨눈 사이였지만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서로 얼마나 많이 수출도 하고 관광도 하는지. 2024년 한 해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이 결혼한 것은 5,017건이었고, 지금까지의 정확한 통계치는 알 수 없지만 2019년에 베트남인 신부의 누적 인원수가 4만 4,172명이었다니 아마도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총수가 10만은 되지 않을까?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베트남 국가대표팀 겸 U-23대표팀 축구감독을 한 박항서에게 보낸 베트남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는 대단했었다. 이제 구원(舊怨)을 다 풀고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수시로 협력하는 멋진 파트너가 되기를 바란다.
[이숙현 시인]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 및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하였으며, 전남대학교 한국어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2005년 《시와사람》으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 『영산전이 생생하다』가 있다. 현재 한국어 및 한국 사회 이해 강의 등을 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