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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1] 장인수의 "만져 봐"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1] 장인수의 "만져 봐"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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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만져 봐

 

장인수

 

아내가 왼쪽 젖가슴을 불쑥 서슴없이 꺼내더니

만져 봐!”

한다

 

나도 모르게 아내의 말랑말랑한 젖가슴을 만진다

아내 종아리를 마사지해 주던 내 손

 

꽃숭어리 만지듯 세심하게 만져 봐! 멍울이 잡히는지.”

 

세심하게 만져보라는 말에

내 손이 떨린다

내 정신이 흔들린다

부드럽고 세심하게 만져다오

아내의 아픈 꽃숭어리를!

 

소규모의 슬픔 응어리가

만져지지 않기를!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문학세계사, 2024)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이 시는 유머러스한 시 혹은 에로틱한 시가 아니다. 비극을 내장하고 있는 시다. 화자의 아내가 어느 날 무슨 조짐을 느낀 것인지 남편에게 젖가슴을 세심하게 만져보라고 부탁한다. 꽃숭어리란 많은 꽃송이가 굵게 모여 달린 덩어리인데 수국이 연상된다. 만져지면 병원에 가야 한다. 응어리가 만져지면, 오오, 유방암일 확률이 높아진다.

 

  해마다 대한민국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는 이가 2만 명이라고 한다. 여성의 암 발병률 1위를 유방암이 마크하고 있다. 매일 55명의 여성에게 유방암 판명이 나는 것이다. 전이가 잘 되기에 가볍게 볼 수 없는 암이다. 고모님 중 한 분이 이 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에겐 혈액암이 찾아왔는데 급성폐렴이 직접 사인이 되어 돌아가셨다.

 

  생---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였고 문학이 존속해온 것이다. 아내가 행한 딱 두 마디의 말이 시의 중심축인데 왜 이렇게 슬픔이 몰려올까. 산다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임을 확실하게 안다면 독재자는 휴전을 선포할 것이다. 백년해로해야 할 부부에게 아무 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장인수 시인]

 

  1968년 충북 진천군 초평면 들판에서 나고 자랐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2003년 계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유리창』『온순한 뿔』『교실-소리 질러』『적멸에 앉다』『천방지축 똥꼬발랄』 등과 교육 서적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창의적 질문법』, 산문집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여』『시가 나에게 툭툭 말을 건넨다』를 펴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특별시 교육감 연구교사로 지정되어 「창의적 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한 주제 중심의 통합교과 토론 수업」 논문을 집필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등 독서토론논술교육연구회 강남지회장, 서울특별시 컨설팅장학위원 활동을 바탕으로 <내일신문>, <미즈내일> 등에 교육 칼럼 및 교육 수기를 연재하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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