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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의 세상보기 : 시 ] 허난설헌(許蘭雪軒) / 홍영수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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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생가, 사진/홍영수 2022/05/21

허난설헌(許蘭雪軒)

홍영수

()의 향기여,  하얀 서설(絮雪)이여!

빈 종이에 눈물, 핏물 자국을 남기고

숨죽였던 차별의 시대, 아픈 성별의 상처를 안고

어찌타! 스물일곱의 짧디짧은 불꽃으로 사라졌는가.

여자의 말은 스치는 바람결에 흩날려 보냈던 때

치마의 허리춤에 시심을 띠로 두르고

저고리 옷고름엔 한 올 한 올의 시상을 동여매었지

시의 씨앗은 반도의 텃밭이 너무 좁아

드넓고 커다란 대륙으로 날아가 발아했고

단장의 고통과 슬픔을 두 번 겪으면서도

참척의 쓰린 아픔은 가슴에 심어 두고

좌표 잃어 다스리지 못한 심사엔 눈물 없이 울었지.

성의 차별과 다름으로 이목구비를 지우고

귀 닫고 입 닫은 정지된 시간 위에

반딧불이가 되어 찾아든 두 영혼이

붓끝에 깃든 넋이 되어 시의 호롱불을 밝혔지.

받침대를 잃어버린 흔들리는 삶에서도

겨울날의 눈보다 늦게 지고

낙화된 두 송이의 고독한 결함을 이겨내며

봄날의 꽃보다 먼저 피었지

못다 할 정은 뜨거운 앙가슴에 접어놓고

여인의 이름이 아닌, 시인의 숨결이 되어

천상의 붓끝에 흩날리는

두 개의 꽃잎 소리를 들었지

 

 

조선이라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억업에 가로막힌 허난설헌. 그녀는 두 자식을 먼저 보내는 참척의 아픔을 안고 스물일곱이라는 짧디 짧은 생을 마감했다. 두 자식을 먼저 보내면서 눈물 없이도 울어야 했던상처와 고독 속에 이목구비를 지워야 했던, ‘허난설헌’, 그렇지만, 그녀는 단순한, 허무나 절망의 시간만을 보내지 않았고, 한탄이나 비극의 울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비록 여인으로서, 서하지통(西河之痛) , 영혼이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서도 어둠을 밝혀주는 반딧불이이자 호롱불을 붓끝에 매달고 두 남매를 위해 엄동설한의 눈보다 늦게 지고, 봄날의 꽃보다 먼저 피면서 핏물,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빈 종이에 시향을 불살랐다.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늘어져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차가운 달빛 서리에 붉게 떨어지네.


- 許蘭雪軒(허난설헌)< 몽유광상산시서(夢遊廣桑山詩序) > 일부.

 

應知弟兄魂(응지제형귀) 너희 오누이 넋이야 응당 알지니,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서로 어울려 놀겠지.


- 許蘭雪軒(허난설헌)<곡자(哭子)> 일부

 

여성을 옭매였던 시대적 배경과 두 자식을 가슴에 묻은 斷腸之哀의 아픔을 시로 승화시킨 그녀, 비록 짧은 생으로 마감했지만, 그녀의 시는 조선이라는 좁은 텃밭이 아닌, 드넓고 커다란 대륙으로 날아가 발아시켜 결코, 죽었을지언정 지나간 슬픔에 눈물을 낭비하지 않았고 두 영혼’, ‘두 송이’, 두 개의 꽃잎과 함께 지금도 우리 곁에 시들지 않고 영원한 시인의 숨결로 피어오르고 있다.

 

'허난설헌 공원',   필자

홍영수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홍영수 시인

-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 한탄강문학상 대상
- 아산문학상 금상
-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지구의 유언장』, 자연과 인문, 2025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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