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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47】이중원의 "마주치다"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마주치다

 

이중원

 

인생이란 장편서사

밑줄 긋듯 걸어가다가

넘어진 시선 너머

未知로 찍힌 방점

호흡은 평생 같은데

찰나로 지나가는

한 줄

 

『꿈꾸는 기호학』 (2025. 고요아침)

 

마주치다 / 이중원이미지:강영임기자
마주치다 / 이중원[이미지:강영임기자]

인생은 분명 길고 복잡한 이야기다.그러나 우리는 정작 그 이야기 속을 밑줄 긋듯 걸어간다.

 

밑줄 긋듯 걸어가다가/넘어간 시선 너머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우리는 계획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그러나 시선이 넘어간 그 지점에서는 더 많은 일이 일어난다.기대하지 않았던 행운 피하고 싶었던 불행은 대부분 의식의 사각지대에서 도착한다.좋은 일은 우연처럼 나쁜 일은 불시착처럼 도착한다.이때 삶은 친절하지 않는다.그저 서사를 밀고 나갈 뿐이다.

 

未知로 찍힌 방점인생의 결정적인 통찰로 읽힌다.우리는 성공과 실패,행복과 불행에 쉽게 방점을 찍으려 한다.그러나 그 방점은 언제나 미완의 상태로 찍힌다.지금의 불행은 끝난 문장이 아니며 지금의 행복 또한 결론이 아니다.좋은 일은 다음 문장에서 의미를 바꿀 수 있고 나쁜 일은 뒤이어 오는 문장에서 다른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아직 그러하지 않음의 상태로 존재한다.

 

호흡은 평생 같은데/찰나로 지나가는/한 줄 이 시에 역설을 드러낸다.(호흡)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복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삶의 장면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어떤 고통은 영원할 것처럼 느끼지만 지나고 나면 한 줄에 불과하다.또 어떤 기쁨은 순간이었음에도 평생 지탱하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좋은 일 나쁜 일의 차이는 지속성에 있지 않다.단지,그것이 어떤 줄로 기억되는가에 있을 것이다.

 

「마주치다」는 인생의 사건을 나열이 아니라 이미 쓰인 서사로 설정했다.중요한 점은 화자가 서사의 주체이자 동시에 독자라는 점이다.이중적 위치에서 생기는 거리감이 시 전체를 차분하게 이끌어가고 있다.또한 未知는 이 시의 핵심적 미학 장치다.결정되지 않음을, 완성으로 끌어내는 것도 이색적이다.

 

밑줄은 강조이면서 동시에 제한적이다.강조된 문장만 보느라 문맥 전체를 놓칠 수도 있다.우리가 순간순간 마주치는 수많은 일도 그러하다.그것은 삶의 의미를 또렷하게 만드는 밑줄이기도 하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가끔 힘들고 숨이 찰 때 찰나로 지나는 한 줄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더 가벼울 것 같다.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자』
 
[편집자주:"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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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시인#마주치다#강영임의시조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