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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의 그림이야기 45]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 _ 해산 최수식

작가 이용범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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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 해산 최수식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 해산 최수식

이 작품은 해산 최수식 화백의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이다. 최수식 화백은 우리나라 지폐 만 원권의 일월오봉도를 그린 화가로도 유명한데, 그의 작품이 영국 대형 박물관에 '미녀와 소' 작품이, 스페인 피카소 박물관에 '호랑이', 일본 우에노 박물관에 '악녀' 그리고 미국 카네기 홀에 또 다른 '악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등 한국 화단의 독보적인 화가이다.

해산 최수식 화백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2살 때부터 그림 소질을 보였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독학으로 공부하다가 10세 때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 14세 때는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하였으며 동양화 양대 산맥인 남종화와 북종화를 두루 섭렵했다.

 

이후 서울대 서양학과에 입학하였고 재학 중 한일수교 반대 학생운동으로 서대문 수용소 수감 중 프랑스로 추방되어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다. 소로본 대학 당시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 어머니 한복 속치마 인견에 말을 그리는 미증유의 사건을 벌리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현재 생존 작가로는 유일하게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혈마도'

갓바위 약사여래불은 꼭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기도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있는 팔공산에 조성된 석조 불상이다. 불상 머리 위에 넓적한 바위를 갓처럼 얹은 모습이 특징적이라 갓바위라고 불린다. 팔공산을 이루는 봉우리 중 하나인 관봉(冠峰, 850m)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5.48m, 재질은 화강암이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이미지가 경주 석굴암처럼 후덕하고 무뚝뚝한 모습이다. 은 본디 팔각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오랜 세월에 걸쳐 훼손되어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초반에 불상의 몸체를 만들었으나 후대에, 아마도 고려 시대쯤에 불상에 갓을 따로 만들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랫동안 인근 주민들은 '영험한 미륵님'으로 생각해 왔으나, 인근에서만 유명했지 지금과 같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진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초에 학술지에 보고되고, 65년에 동아일보에 보도되면서 보물로 지정되었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팔공산의 갓바위 약사여래불 부처님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단 한 가지만 들어주신다고 알려져 있다. 갓바위 부처님께 치성을 잘 드려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도 있고, 자식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이야기 등 중생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많은 전설들이 전해온다. 그래서 일 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곳 팔공산 갓바위 터는 자녀의 학업이나 취직, 결혼 성사를 위해 부모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영험한 곳으로 전국적으로 소문나 있다. 특히 입시철에는 전국에서 오는 수험생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갓바위 부처님 그림을 거실에 걸어두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갓바위 부처님을 해산 최수식 화백은 검정색 배경에 황토색으로 갓바위 부처님을 단아하고도 단순하게 그렸다. 가부좌를 하고 향촉마촉진 수인의 자세를 한 우리와 동떨어진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을 지키는 친근한 모습으로 서민과 함께하는 부처님을 그렸다. 모든 이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말이다.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

 

작가 이용범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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