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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탐방] “잘 그리면 탈락입니다” 부천 모지리 카페에서 열린 제7회 못그린 미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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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탐방] “잘 그리면 탈락입니다” 부천 모지리 카페에서 열린 제7회 못그린 미술대회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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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그려도 괜찮아! 유쾌한 전시 탐방
못그려도 좋다 [ 사진 :류우강 기자]

[부천=코리아아트뉴스 이영찬 기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조용한 주택가, 그 골목 안쪽에 자리한 작은 카페 ‘모지리’에서는 지금, 예술의 기준을 뒤집는 특별한 전시가 한창이다. 

못그린 미술대회  전시 장면 [ 사진 : 류우강 기자]
못그려야 상을 받는다 [ 사진 :류우강 기자]


8월 1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제7회 못그린 미술대회는 이름부터 파격적이다. ‘못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한다는 이 행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공동체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못그린 미술대회 포스터
못그린 미술대회 심사 안내 포스터

전시 공간은 카페 1층에 마련된 ‘못그린미술관’. 액자에 담긴 그림도 있고, A4 용지에 휘갈긴 듯한 낙서도 있다. 수채화, 유화, 연필화, 콜라주 등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참가자 역시 제한이 없다. 어린이, 어르신, 장애를 가진 분들까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그냥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된다”는 말이 진심으로 통한다.
 

못그린 미술대회 전시 장면 [ 사진 :류우강 기자]

심사 방식은 이 전시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낸다. 관람객들은 가장 못 그린 그림에 스티커를 붙인다. 전문가 심사단 역시 “무엇이 가장 못 그린 그림인가”를 기준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 기교가 뛰어난 작품은 오히려 탈락하고, 엉뚱하고 서툰 표현이 담긴 그림이 상을 받는다. 이곳에서는 ‘못 그리는 용기’가 예술의 본질로 여겨진다.
 

못그린 그림일까 [ 사진 : 류우강 기자]

상금도 유쾌하다. 동네 치킨집 사장이 내놓은 치킨 티켓, 문방구 엽서 세트, 손수 만든 꽃다발 등 이웃의 정성이 담긴 선물들이 수상자에게 주어진다. 상 이름도 독창적이다. ‘날나리상’, ‘땅크상’, ‘예술장돌뱅이상’, ‘모지리상’ 등 각기 다른 후원자들이 직접 이름을 붙이고 상을 후원한다.

아무렇게나 그려야 상을 받는다 [ 사진 : 류우강 기자]
못그린 미술 대회에서는 액자에 그림을 넣은 것은 사치다 [ 사진 :류우강 기자]

이 모든 전시는 모지리 카페라는 공간에서 이뤄진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명상과 예술이 공존하는 마을공동체의 중심지다. 운영자 ‘명상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김영수씨는 말한다. “예술은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만족과 즐거움이 중요하다.” 그의 철학은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모지리 카페 문지기 '명상맨' [ 사진 :류우강 기자]

카페 내부에는 못그린미술관, 마을공방 ‘리리’, 꼬마평화도서관, 명상 공간, 유튜브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예술과 배움의 공간이 공존한다. 지하에는 아이 돌봄 공간과 소동아리 모임실도 마련되어 있어, 지역 주민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공예 소품을 사며, 자신이 즐긴 만큼만 부담하면 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재능기부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곳은 진정한 예술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모자란 합창단 포스터

‘모지리’라는 이름은 전라도 사투리로 ‘머저리’를 뜻하지만, 이곳에서는 ‘지혜를 모으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재해석된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공동체적 가치가 담겨 있다.
 

모지리 카페에서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강좌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 [ 사진 :류우강 기자]

제7회 못그린 미술전시회는 단순한 미술 대회가 아니다. 이는 “예술은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예술은 즐기면 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부천의 작은 골목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은,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장 못 그린 그림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못그린 미술관'을 그린 잘그린 그림 [사진 :류우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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